salut,

진흙 얼음 2011. 9. 9. 03:14


  등단을 목적으로 두었다고 '명기한' 시 스터디를 충원한다고, 참여를 타진해온 후배에게, 그런데 시, 를 스터디, 하는 게 뭐지요,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정말 재수없는 일이지 최근 몇 년 간 내 직업은 아무튼 그거였잖아 시 공부 하다가 망한 사람이지 이게 달리 뭐야
 - 시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만 모을 거예요.
 - 누나를 포함해서 최종심에 오른 사람만 벌써 n명인 모임이예요.
 나는 등단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사람들 틈에 있지 않으려고 이렇게 살았다고
 하기에는 좀 징그럽기도 해서, 아무튼 나를 불러 주었다면
 그건 나를 좋아한다는 뜻이겠지, 그럼 됐어.

 마음이 딸꾹질을 뱉어낸다. 이런저런 일들로 한참을 울었더니 이젠 울지 않을 때도 눈을 누르고 다녀야 한다. 육식모임에 따라갔는데, 부득불 야채쌈을 싸서 입마다 넣어주는 내게--명실공히 채식인이니까--친구들은 독도 지킴이 모임에 들어와 야스꾸니 신사에 참배하는 사람 같다고. 
 - 윤리적인 하자 없어 내게는 
 그러나 정말 그런가  

 청강하러 들어간 y선생님 수업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 모여앉았다, 다들 박사학기생이 되어 있었다. "옛 애제자들이 박사가 되어 모여 있으니 시간이동을 한 것 같아, 행복해." 
 저는 박사 아니예요 선생님.
 수료했으면 박사대우 해 줘야지. 
 학기초의 자기소개가 몸에 설다. 영문학 석사를 수료했고, 낭만주의 시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이제 내 옷 같은 거짓말인데
  ...currently working on my m.a. thesis on british romantic poetry. 컨트롤 c 컨트롤 v. 

 *
 낭만주의 시는 혁명시예요
 그래서 좋아해요, 좋아해요 좋아해서 하는 거예요 
 그건 여기 아닌 다른 데서 사는 거예요 방점은 사는 거 
 사랑, 생활, 혁명 
 입을 맞추고 싶은 말들, 이라고 말하면서 이번 생에 거짓말을 너무 했으니
 다음 생에는 혀가 뽑히나

 그렇게 좋아했는데... 

 미움받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두 아직도 널 미워한다고
 알려줄 필요는 없는데 너라도, 그건 그렇지 않다고 
 거짓말 해주면 좋았을 텐데 너는 너무 정직해서 
 나를 둘러싸고 떠다니는 증오를 친절히 예보하며 
 여긴 가지 말아라, 저기 가면 죽는다, 알려준다 

 자립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선생님 저는, 잉여네요.
 처음으로 그렇게 발음하고 웃으려다 섬뜩했다
 농담하고 싶었던 건데. 


 *
 종일, 사람들의 기도를 받았다. 입술이 찢어지게 웃고 다녀도 (정말 찢어졌다) 초조한 마음이 목소리에 밀려나오는 걸 어쩌라고. 그런데 아직까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맙소사, 전부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람들 뿐이었다. 기도해 줄게, 라는 말을 세 번째로 듣고는, 아, 언니, 기도는 좀 접어두시고, 하고 말았다.
 왜?
 제가, 
 기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이제 남의 기도제목은, 모르겠고 그만하고 싶어서.
 
 아빠는 자꾸 부처님에게 내 안부를 비는데
 나는 성경책 위에 엎어지고 그런다 메밀 베개인 날이 더 많아  


 *
 지도교수와의 감정노동, 이 일종의 연애라면 내 다혈질 낭만주의자 연인에게 나는 결국 차인 것 같다. 내가 불성실한 연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이 연애의 형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내내 불만이었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결별한 적 없는데 연락이 끊기더니 차츰 그렇게 되었다, 어영부영 공소시효가 지나고 그렇구나 우리는 헤어졌구나,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 들리는 풍문으로 연인은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바쁘게, 아름다운 새 연인도 생겼다고 한다.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옛 연인에게 전활 걸었는데, 그는 처음에 내 목소릴 알아듣지 못했다. 저예요. 아... 그래 너구나. 
 잘, 지내시라구요. 
 저는 잘 지내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땐 온통 패악이었다 걱정하지 마시라구요! 패악과 패착. 드라마를 전공하겠다고 삽질하던 나날의 공적으로 드라마퀸이 되었다, 자랑해야지, 전공을 잘 살린 거다. 베케트를 그렇게 좋아했으니, 영원히 실패다. 말들의 눈을 모두 뽑아 버려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어쩌고 있니.
 시 수업을 들어요.
 행복하겠네. 
 사랑에 관해 읽기로 했어요.
 그렇지, 다 사랑 얘기지...

 고백하자면 나는 당신이 병원에 앓아 누웠던 가을에 가장 사랑했다. 수업을 마치고 커피 두 잔을 사서 식기 전에 날쌔게, 택시를 타고 달려가면 당신은 휠체어를 밀고 벌써 나와 있었다 간병인 모르게 몰래 담배를 권하며 상한 무릎의 담요를 고쳐 덮어 주는 일이 끝나면 삐걱이는 검은 창틀에게 돌아와 엎드려, 이상한 일이지만, 기도했다 내가 건강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유에 너무 몰입했나.
 이건 연애 이야기가 아니다.
 지도교수 갈아타던 얘기지, 그리고 내가 휴학과 죽음을 반복하다가 멍청해져서 석사 수료 잉여가 된 얘기다 그러니 슬픈 얘기다 끝난 연애 얘기가 슬픈 것처럼.  


 *
 그러니까 그나마 연애, 랑 비슷한 얘기는 이런 거.

 너를 보아도 마음이 내달리지 않더라
 좋아한 게 아니라 부끄러웠던 거구나 
 그래도 넌 참, 되게 예쁘더라 아직도 
 잘 지내냐고 묻지는 말길 거짓말은
 여전히 못 한다

 그렇게 좋아했는데, 의 그렇게, 는 such 인가
 그건 such and such 라는 뜻인가
 그렇게 좋아했는데,
 이젠 다신 안 만났으면
 더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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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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