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 곳에 일기를 써왔지만 여기에 오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요즈음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여러 곳에 이유를 돌린다, 그 이유들은 모두 사실이기도 해, 번역을 하면서 부적절한 대우를 받았다고 하면, 동료들은 모두 안쓰러워하며 그 부적절한 회사를 욕하지만, 사실 특별히 악랄한 회사가 아니라면 모두가 부당한 줄 모르고 부당한 일을 한다. 옅은 모욕감을 남긴다. 옅은 모욕이 모여서 진해지고 허리를 뚝 부러뜨리는 마지막 지푸라기가 된 일 이후로 나는 계속 피곤해하고 있다. 알고 보니 그건 나에게 커다란 자궁근종이 몇 개나 있어서였다. 복강경이 가능할지 몰라 개복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다. 보호자가 되어 줄 어머니가 너무 바쁘고, 내가 진단받은 같은 날 아빠가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겨울에 엄마가 두 사람 중 하나를 간호한다면 아빠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 나를 먼저 생각하는 친구들은 당연히 뇌경색이... 의외로 그렇게 큰 질환이 아니라고 너를 먼저 생각하라고 하지만, 아빠는 은퇴하자마자 계속 아팠다. 아빠는 심리적으로도 고통스러워하고, 의문의 질환들을 계속 앓고 있고, 그렇다고 그걸 혼자 이겨낼 만큼 강하지도 못하다. 와중에 엄마가 요양보호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실습이 있는 한달간은 아예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거. 아무튼 나의 수술은 3월로 미룰까 싶지만 최대한 1월 말에 해보고 싶다. 나도 수술은 싫고 두렵다.
또한 올해는 경제적인 문제가 꾸준히 있었다, 일은 꾸준히 했고 돈도 꾸준히 벌었고 절대적인 연소득이 결코 적지 않은데 봄에는 과도하게 청구된 보험료+연체로 인해 큰 고생을 했고, 빚을 갚을 무렵에는 고양이가 아팠고, 그 빚을 갚기도 전에 내가 아프고, 일은 점점 느려지는 가운데 일에 대한 마음을 더는 유지하기 힘든 일이 있었다.
오늘 새벽에 일기장에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휘갈겨쓰면서 며칠 전에 y를 앞에 두고 울었다. Y와 헤어질 때 친구들은 잘했다고 했다. 너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우린 자꾸 월세를 밀렸고 찢어진 옷을 입고 다녔고 생일이나 기념일은 챙기지 않았고 아주 별로인 곳에서 아주 맛있게 외식을 했고 나는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y를 아주 많이 사랑했지만 가난해 보이는 여자들이 손을 잡고 다니면 울고, 아파트에서 과외를 하고 나오면 울고, 내가 키우는 화분이 작고 작아서 또 울었다. Y는 며칠 전에도 수백만원짜리 가방이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내심 그런 가방을 하나 갖고 싶다. 정말로 사지는 않았다. 아직도 그런 게 나한테 필요하단 확신은 없어서다. 우리가 만나던 어느 가을에 내가 새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가자 친구들이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보기 좋다고, 네가 y와 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헤어진 뒤에 y는 나 때문에 네가 집을 예쁘게 꾸미지 못해서 미안했어, 라고 말했었다.
이십대 후반의 시를 쓰는 사람이랑 삼십대 중반의 연극을 하는 사람이 같이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 같았다.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했고 우린 둘 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지만 나는 그게 나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때의 내게 삼십대는 너무 늦어서, 좋은 배우가 되려면 지금은 연극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재능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덜 지쳤다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서, 우린 둘다 몸이 허약해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몸이 상했고 나는 직업을 구했다. 그런데 지금 이런 기억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있다. 내가 요즈음 계속해서 우울한 진짜 이유를 내가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직업을 구했다. 적게 버는 사람보다는 많이 벌고 많이 버는 사람들보다는 적게 벌고 나에게 필요한 것보다는 아주 충분한.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는 y와 헤어진 뒤였지만 나는 우리가 동거를 끝낸 다음 그가 혼자 살 작은 집을 구하던 때가 기억났다. 함께 살 때 우리는 해가 잘 들고 방이 세 개인 곳에 살았는데 (영영 그 집을 아련하게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본 y의 방 중에는 끔찍한 곳이 있었다. 화장실이 바깥에 있고 욕실 대신 방 한 켠에 타일로 된 작은 모퉁이가 있고 수도꼭지 하나가 달려 있던 곳이었다. 그 집은 언덕 위에 있었고 나는 화가 나서 그런 집에 살지 마 저기는 절대 안 돼 차라리 다시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고-헤어지고 있는 중이었는데도-소리를 질렀고 y는 내려오는 길에 내내 말이 없었다. 내가 구한 집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첫날에 엉엉 울었다.
삼십대 초반부터 나는 계속 일에 매달렸다. 시작이 많이 힘들었고 몇 년 뒤에는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고 이후에는 내가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일을 열심히 했고 덕분에 지금은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요즈음 솔직한 순간이 없었다. 물론 경제적인 곤란이라거나 부모와의 갈등에 대해서는 상대를 잘 골라 이야기하지만 그런 것들은 수치스럽지만 좋은 친구들에게는 숨길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약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솔직했던 순간은 작년에 학위과정을 완전히 포기했을 때였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결정을 내리던 24시간 동안 너무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친구들에게 했다. 내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 아무것도 마무리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누구의 조언도 받지 못한 일이 너무 외로웠다는 사실. 그런 말을 하며 엉엉 울었다.
그 뒤에 나는 더 과로했다. 지난 몇년간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한동안 내가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편안하기 위한 조건은 그렇게 크지 않았고 마음에 드는 집에서 큰 걱정 없이 어느 누구에게도 쫓기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원하는 작은 사치품들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했다. 나는 y와 살던 동안 더 무서운 미래를 상상하고 각오했고 그게 나의 생활이 되리라고 믿었다. 내 부모와 형제와는 다른 기준의 삶. 가진 것이 없는 한 사람이 시를 쓰고 다른 한 사람이 연극을 하면 그리고 그렇게까지 특별하게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런데 그 두 사람이 동성의 연인이기까지 하면 당연하게 갖게 될 삶.
필라테스를 배우고 싶으면 몇십 번이건 배우고 개인 수영 강습을 받고 좋은 재료로 요리를 해먹고 실수로 잃게 된 몇십만원이 그렇게 괴롭게 아깝지는 않고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사고
우리가 친구들의 결혼식과 생일 앞에서 머리를 맞대 고민하던 시절과는 달라졌다.
이 이야기를 왜 이렇게 오래 쓰고 있지
나는 번역하는 일을 좋아하고 행복해했고 책을 사랑했지만 사실 그건 내가 반쯤 미쳐 있지 않는 한 그렇게 보람찬 일은 아니다 최근의 일만 봐도 그렇고
언젠가는 무슨 상이라도 받으면 보람이 좀 생기지 않을까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어째서 올해의 책 후보에는 단 하나도 올라 주지 않는 걸까
그러나 잘 된다고 해서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은 사는 게 재미가 없었고 종일 재미있는 행동들은 모두 원고 속 인물들이 한 것이었다
오늘은 그게 그렇게 싫었다.
책은 출간된 이후 나의 결정과는 상관없는 생활을 살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절판되고 또 잊혀질 것이다.
이런 일을 내가 목숨이 매달린 것처럼 건강을 상해가며 꽉 붙들고 있는 이유는
고작 이 일이 y와 살던 시절의 내 두려움을 극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내가 형편없는 겁쟁이라서라고
난 둘 중 하나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우리의 형편에는.
그리고 우리가 우리가 아니게 된 이상 나는 더 이상 일을 하느라 이렇게 힘을 들일 필요가 없는데
원고료가 이달 말이고 계약금도 내일 모레나 들어올 것이고 나는 정말로 돈이 없어서 동전을 모아 짜파게티를 사서 기가 막히게 끓여 먹었다
내가 자취하며 익힌 기술에 더해
집에 있던 좋은 치즈와 좋은 올리브유와 특별한 재료들을 넣어서.
그걸 먹고 나서 난 생각했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수영강습같은 거 받지 못해도 매달 동전을 모아야 해도
그냥...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서른살쯤에 친구 집에 갔는데 동전을 모으는 통에 동전이 가득 차 있는 걸 보고 핑 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 시절 우리들의 집에는 동전이 쌓일 겨를이 없었다
다 써버리기 때문이었다
우린 <업>을 본 다음 여행을 가기 위해 동전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동전들 역시 담배나 라면을 사느라 사라지고 말았었다
난 거실에 동전지갑을 놓고 꽉꽉 채우는 걸 내심 흐뭇해하고 있었지만 올해는 동전을 모아서 이것저것 사먹었다
어쩌다 보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는데
그게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물론 가족과 친구들은 괴롭겠지만
번역을 해서 버는 돈은 결코 많다고 볼 수 없는데
나에게는 충분했다 특히 나만큼 과로를 한다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그게 한동안은 편안했지만
나의 안목에 맞는 좋은 물건들을 살 수 있게 해주어 좋았지만
이제는 필요가 없어
요즘은 낮에 울면서 일을 한다
그만두려면 마무리를 잘 해야 하니까
그리고 뭐라도 써보려고 노력한다 내가 상상하지 못한 미래이다
정말 안 하던 일을 해봤다 온라인으로 사람 만나기
사실 만날 생각은 없었는데 그 뒤에 연락해온 사람들 하나같이 별로여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게 됨
실제로도 괜찮은 사람인 거 같다 그걸 내가 좋아하는가는 다른 문제지만 요즘 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 새로 만난 사람은 허세가 심해 보이고 맞춤법 틀리는 사람 싫다면서 약간은 틀리고 근데 난 또 그런 사람 우쭐하게 만드는 법 모르는 거 아니고 그냥 그래 이 사람 얘기가 다시 등장하지 않으면 두번 안 만난 거 그리고 당분간 그런 기빨리는 일 안할 거
아무튼 나는 드디어 일반 진료 받기에 성공해서 약 맞추고... 괜찮았다. 나아졌고, 런데이를 다시 시작했고 아침 밤 루틴을 전날부터 생각하고 잔다 잠시도 고요하게 있기 어려운데 강제적으로 이것저것 해. 오디오북도 여러 권 들었고 책도 많이 읽고 작업도 폭발적, 새 계약을 했다. -하지 않으면 안 해야지 생각했는데 그냥... 했다. 빈 시간이 많은 게 좋지가 않어 이번 주는 수영을 두 번 했다. 수영한 날은 피곤해서 작업을 잘 못하는데 집필실도 꼬박꼬박 간다 그러고보니 입주작가 재신청 선정되어서 총 6개월 쓰게 됐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첼로는 지난 주 쉬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악기 안고 있을 때 위로가 된다
그리고 입맛이 전혀 없어서 체중 줄고 있음...
난 자애명상도 많이 해
그걸 좋아해서.
얼마 동안은 걔가 나한테 했던 나쁜 짓들이 자꾸 떠올라서 힘들었다 그렇게 나쁜 일들을... 또 하다니. 믿을 수 없다.
난 그냥 걔가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려고.
나의 가장 약하고 여리고 병든 부분들을 자극하는 사람
이제는 견딜 수가 없다
나한테 왜 그래야 했을까 생각하면 걔가 안타까운 마음이 아직 있어 난 그걸 이겨야 할 것 같아
캠핑 가고 싶다 불멍하면 좋겠지
난 그냥 드라이브나 가고 싶어 남의 옆자리에 앉아서
누워서 별을 본다든지 오픈워터 수영을 하는 낭만적이고 생활적인 일을 하고 싶어
그리고 신발에서 모래를 다 끄집어내고 싶다
탈탈 털고
얼굴 절반이 눈물로 번들번들해져 깨어난 아침 고양이만한 무게를 느끼면서 한참 가만히 누워 있었다 실망감이 깊고 매일 조금씩 나를 더 찌르는데 그걸 무시할 수 있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어 적막한 주말 아침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