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루비프룻

진흙 얼음 2011. 8. 16. 02:34


 꿈 속에서 그녀는 떠나고 싶어했고 나는 꿈의 컨벤션에 따라 그녀를 구해야 했다, 아, 이건 너무 피곤한 꿈이다 꿈의 주인은 나니까 어차피 그녀의 온갖 고독과 소망도 내가 대속하는 것일진대 이번엔 구하기까지 하다니 하룻밤 꿈자리로 해소될 일이 아니다. 아무튼 그 fort/da 게임에서 대낮까지 사경을 헤매는 중이었다. 나는 그녀를 구할 수 없었고, 그래도 그녀는 떠났는데, 각종 소지품을 두고 가는 바람에 그녀를 뒤쫓아 가야 했다. 그러나 꿈의 컨벤션에 따르면 어차피, 우리는 만나지 못한다. 그녀의 친지들에게 그녀는 여기 없다고 전하면서 가방 안에서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게 필요치 않은 것들을 다 끄집어냈더니 가방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를 좇을 필요가 있을까? 가방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부드러운 염소가죽으로 되어 있는 그 가방을 그냥 그녀가 내게 남긴 유품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여름의 광장으로 나왔는데 구멍가게에서 나이든 체코 출신 여자가 과일의 즙을 팔고 있었다. 나는 그런 나이의 여자들의 손이 얼마나 부드러운가를 안다 그리고 향기롭다 진한 계피 냄새가 났다.
 선반에는 붉은 과일들이 색약의 눈으로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깊이를 지닌 채 쌓여 있었다. 나는 꿈 속에서 색채를 보는 걸 좋아한다 눈을 바꿔 낀 것처럼 아름다우니까. 나는 딱 한 무더기의 과일을 골랐다 내 눈에 가장 반짝이는 붉은색을 가진 것들이었다.
 이 과일의 이름은 뭔가요.
 모르지 않잖아요.
 그렇군요 이것들은 루비군요.
 여자가 내 손에서 가방을 빼앗아 루비 과일들을 넣고 마구 짓이겨서 염소가죽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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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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