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y.에게, "너 나랑 되게 사귀고 싶었지?" 그러자 y.가 멈칫하다 대답했다. "일단 사귀어 보고는 싶었지."
"그럼 눈을 감고 우리가 예전에 살던 집의 꼬라지를 3초간 생각해 봐."
"윽."
"지금 되게 행복한 거지? 원하던 대로 다 됐지?"
그러하다.
며칠간 감기몸살과 감정적 격랑이 지나갔고, 첫 책 원고를 마무리하기 직전에 출판사에 말미를 달라고 요청하면서, 이상한 불확실과 불안감이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오랫동안 출판번역을 원했고,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기회가 더디게 왔다. 선뜻 일을 맡겨 주는 사람도 없었고, 노력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회가 눈 앞에 있더라도 그건 바라던 좋은 책이 아니었다. 다행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아는 편집자들을 만났고, 책 두 권을 계약했고, 둘 다 내가 원하는 책이었다. 좀 더 기뻐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두 권 중 첫 책 원고를 거의 마무리하고 원문대조를 두 번 정도 돌리는데 이상하게 고칠 게 많았다. 청소년 대상인 책이니만큼 톤 조절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용어에 정확성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충돌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눈꼴사나운 자기합리화로까지 이어졌다. 기록적인 자신감 저하의 상황까지 한참 내몰리다 왔다.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스스로를 가장 많이 괴롭힌다. 아무튼 괴로움은 잠깐 머무르다 지나갔다. 그래도 첫 책을 하는 동안 들었던 생각들을 성실히 기록해 두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써 둔다.
I사 책은 다음 달 초에 마감, J사 책은 다음 달 말까지로 예정되어 있지만 아마 조금 더 말미를 갖고 싶어질 것 같다. I사에서 다른 책을 검토 중인데 번역 수주의 전망도 긍정적인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다. 언젠가 꼭 번역할 수 있었으면 했던 책이기 때문에!
실은 요즘 일어나는 일들 중에는 멋지고 신나는 게 더 많은데, 하필 내가 이렇게 생겨먹어서 미약한 불안의 요소조차 놓치는 법이 없다. I사에 검토 관련해서 메일을 쓰다가, 예전에 <삐라>에 쓴 청소년 문학 관련 글에 대해 잠깐 언급했는데, (나는 그 글도 되게 싫어하지만) 내가 하게 된 일들이 내가 쭉 원했던 것이라는 것,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칭찬해 줄 필요가 좀 있다. 으윽, 서른을 목전에 두고 (회복탄력성 강화에 이어) 자존감 훈련이라도 받아야 하나. 아래는 작업일지의 한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