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일정을 머릿속에 정돈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상해서 네가 읽다 엎어 둔 책을 다 읽고 잤다, 육백 페이지가 넘는데도 별 건 아니었다.
저녁에 친구가 사준 샌드위치는 맛이 좋았고
낮에 애인이 볶아준 무나물도 맛이 좋았다
코를 와장창 고는 곁에 붙어 누워 있으면
세상에는 무슨 그런 이상한 일이 많은가
의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들깨를 돌돌 볶아 무나물도 해먹었는데
고양이는 황혼처럼 졸고
아주 현대적이며 이상한 음악처럼 네가 쿵쾅쾅 코를 고는 동안에
나는 별 것도 아닌 책을 읽느라 어깨가 아프다는데 말이다
우리는 가끔 발신번호만 확인하고선 전화길 뒤집어버린다 어쩔 수 없다
그런 일이 창피해서 언젠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다녔고 너는 아직 내가 어리다고 한다
졸업시험, 발제, 보일러의 고장, 집세, 수업료, 독촉전화, 최고장,
음식물 쓰레기 캣리터
난방수의 미지근함
빼먹고 싶은 양치질이나 추위에 튼 발목
그 위로 크림을 두껍게 문질러 바른다
신용카드 한 장으로도 침입할 사람은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잠재적인 악의와 나의 행운을
만지작거리면서 자야지
카레를 해준다는 약속을 네가
잊지 않았으면
세상에 참 이상한 일들이 많아도
내일 당장 어쩔 수는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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