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민어를 먹으러 갔대서
우리는 왜 안 데려갔대, 투덜댔더니
연인은 우리가 가난하고 덜 친해서라고
심상하게 대꾸하며 묻는다, 민어가 먹고 싶어?
아니 나는 민어가 미워
민어 완전 별로야 재수없어
차가 많이 막혔고 잘못 꺼내 입은 원피스 때문에 체할 것 같은 채로
강변북로를 내다보았다
박복한 별자리처럼 미등들이 이어져 있고
나는 데이트하러 가는 길도 뭐 이런 고생일까
엄살일까, 신경질이 나고
요즘 네가 좋아하는 농담은
할 일도 없고 분위기도 별로니 집에 가서 섹스나 하자
그건 아마 내가 가르친 걸거다
청기와 사거리에서 여러 번 소리를 지르며 울다가 위액을 토해내고, 문득 앞이 안 보이는 날이었다, 연인이 잘잘못이나 전후사정 같은 건 잊어버리고 무조건 내가 잘할게, 내가 잘할게 하며 집으로 데려다준 날이었다.
전날 밤에는 길거리에서 전화길 붙잡고
나쁜 말들만 소리질렀고,
그날 낮에는 골목으로 달려 도망치는 동안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강을 건넜던 택시를 유턴시켜 다시 돌아오면서
내 택시비를 지불하도록 너에게 전화하는 기분
너는 그렇게 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었는데,
아마 나도 그런 건 본 적도 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일들을 하게 될 줄도
그날 밤엔 깨었더니 연인은 잠든 채로도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간신히 밟아 넘기고서도 서로 겁에 질려서
잠꼬대로 내가 잘 할 거야, 한다
아마 나도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거다.
꿈에서.
쉬운 직업이 없다.
우리는 소나무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아 바퀴벌레의 덫을 놓고는
가습기와 스팀 청소기를 사는 일에 관해 생각한다.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은 튼튼한 나무로 된 체스트,
이젠 모든 걸 안 보이게 수납하고 싶다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있건 말건
첫 칸에는 속옷과 스타킹, 스카프
아래칸에는 계절이 지난 옷들
특정 층의 거주민들은 우리들의 층계를
도저히 침범하지 못하는 쪽으로.
겨울까지 기타를 배우지 못하면
팔아서 살림에 보태고 싶다.
우리가 새것일 때 너는 옥상에서 흔한 영화 주제곡 하날 쳐 주면서 이 노래는 시시하다고 머쓱해했다
그건 정말로 시시하긴 했다, 노래가.
애인님 저는 새가 되려고 해요 까마귀 물총새 황조롱이를 생각해 봤어요
고객님 까마귀는요, 시크한 블랙수트가 제공되세요. 합법적으로 절도가 가능하지만 장물은 댁으로 직접 옮기셔야 합니다. 황조롱이는 식생활이 설치류 위주신데 괜찮으세요?
채식은 곤란한가요
채식을 하시면 굳이 높은 곳에서 빙빙 도실 필요가 없습니다만
물총새가 되는 게 좋겠네요 생선도 많이 먹을 수 있고
아, 네 물총새는, 물총을 쏘셔야 하는데, 그걸로 물고기를 잡으셔야 합니다 고갱님. 발을 물에 담그고 계셔야 해서 습진 등 주의하셔야 하구요
제가 어릴 때부터 지혜롭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올빼미도 약간 관심있고 목에 끈 묶는 걸 좋아해서 가마우지도 알아볼까 하는데,
올빼미 말씀이십니까 고갱님, 목이 360도 회전하셔야 합니다, 시력이 좋으셔야 하구요 가마우지는, 부리와 목이 발달해야 하는데 고갱님 현재 인간으로서는 퍽 괜찮으십니다만 조류가 되면 아무래도 신체적인 한계가 있으세요 되시더라도 집단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짝을 못 찾는 경우가 있구요. 아무래도 동물세계에선 외모나 능력보다는, 일단 유전자 단계에서 결정되시는 점 참고하셔야 합니다 고갱님
참 제가 잔여수명이 좀 있는데 승계 가능한가요
안타깝습니다만 고갱님, 수명 문제는 승계가 어려우시구요.
제가 실은 사귀는 포유류가 있는데.
그게 참 드문데요 보통 파충류, 라면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을 통한 파트너를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지만, 포유류라면 고갱님이 말하자면, 그, 케이지 생활을 선택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