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어릴 때 내게 미모사야, 봉숭아야 불렀는데 (건드리면 순식간에 움츠리거나 폭발해서) 이름의 섬 자는 내게 징그럽게 나 있는 섬모들에게 바치는 글자. 미모사향 밤을 손목에 문지르면서 맥이 뛰는 자리를 긋는 사람과 돌보는 사람들은 서로 얼마나 멀리 있나 생각했다. 내 섬모들은 건드리면 사이렌을 울리면서 멸망까지 남은 시간을 카운트다운하는데, 요즘 나는 그것들을 들쑤실 생각이 없다. 무엇을 두고두고 노여워하는 대신 전화들을 받아야 한다.
집 하나를 보기로 하고 그곳 세입자와 연락하는 동안에 다른 곳에서 전화가 네 통 걸려왔는데, 오는 족족 '무시' 버튼을 터치하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무나에게 전화를 천 통쯤 걸어 괴롭히고 싶었다. 마음을 무너뜨릴 일들은 계속 발생한다. 옥탑방이 가진 몇 가지 이점들이 잘 알려진 불편들보단 무거우리라 생각했는데, 몇 군데 보고 나니 이제 옥탑방 생각만 해도 위가 욱신거린다. 나는 작은 옥상을 가지고 싶었는데, 벽돌건물이건 컨테이너 박스건 공통적으로 미묘하게 수평이 맞지 않았다. 크건 작건 기울어진 방들 속에 서 있으니 미처 예상치 못했던 앵자이어티가 찾아왔다. 내 섬모들은 참 분주하겠다, 건물의 평형까지 관장해야 하고. 모든 것이 과민한 신경 탓이니 그래도 그것들이 지금 나를 무너뜨려서 어떡하겠나. 집에 돌아온 다음엔 캐치업해야 할 수업 과제물을 붙들고 있었다-워크샵을 몇 번이나 놓쳐서, 오늘은 결국 에세이의 개요만으로 크리틱을 받았다. 리바이즈 할 시간이 전혀 없는데 제출은 다음 주-일찍 시작한 하루에다 저녁 술까지 마시고 들어왔으니 내일 일정을 위해 자려고 부스럭거리는데 까맣게 잊고 있던 프로포절 제출이 오늘 두 건이나 있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는데. 왜 이런 것들은 만우절 농담도 아닐까. 몇 시간 후에는 다시 집을 구하러 외출하고, 과외를 가야 한다. 내일도, 모레도 동일한 일정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날들에 마주치는 벽에 붙은 새 연극 포스터 같은 것들은 섬모들이 아니라 속눈썹을 건드린다. 놓친 무대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자꾸 무엇들이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가고, 나는 늘 넘어지는 것 같은데, 한 손에 버릴 것, 한 손에 소중한 것을 든 채 넘어질 때 최선을 다해 몸을 굴려 잘못된 것을 구하는 습관은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서 끝이 나나. 그래도 이런 날들엔 반자동적으로 마음이 아껴진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마음이 내달리지 않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마주치고도 끔찍한 표정을 지을 근육이 없으니까, 그래도 어젠 딱 한 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오해받고 있다고 외치고 싶었는데,
도망쳤다. 오해를 풀기 위한, 혹은 노여워하기 위한 신경들은
끝없이 평형이 일그러진 집들에게로 달려가고
남는 것이 있다면 몇 편의 밀린 에세이를 쓰고.
실은 내게 중요한 건 예습 뿐이다. 예습하지 않은 날은, 혹은 정말 그럴 필요가 없는 날에도, 아침부터 수업 직전까지 불안하다.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레퍼런스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두 번이나 빠진 수업에서, 오늘 레퍼런스를 끝까지 읽어온 사람에게 거수를 시켰더니 나밖에 없었다. 그런 식이다, 다섯 학기째, 이젠 내가 끝마치지 못하면 대개 남들은 그만큼도 않는다고, 모든 경험들이 말하는데 그건 왜 영원히 날 괴롭히나. '적당히' 하는 게 왜 내겐 한 번도 적당한 적 없었을까. 혹시 나는 날 너무 미워하나.
노트북 어댑터와 책 몇 권을 사는 걸 자꾸 잊어버린다.
어댑터는 몇 달 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댑터가 망가진 랩탑을 몇 달째 놀리면서 거의 매일 오늘은 꼭 주문하겠다고 생각하고, 매일 잊는다.
멀리서 오는 값비싼 책들을 사용해야 할 날은 다가오는데 해외배송의 날짜들이 들어맞아 줄까. 나는 또 늦게 도착한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게 아닐까.
길에서 m을 만날까봐 겁이 난다. 언젠가 싫은 사람들을 나열하고 이들 중 하나와 인생을 바꾸어야 한다면 누구로 하겠냐고, e와 악의 섞인 농담을 했는데, 내가 m을 골랐다. 그 사람에겐 아무 것도 없잖아, 하지만 똑똑하니까, 그냥 그 사람이 되어서 그렇게 안 살래. 끔찍한 얘기지만 그건 m에게도 나은 일이라고 덧붙일 생각이 실제로 있었다. m은, 내게 보여준 그 많은 호의에도 불구하고, 내가 처음으로 깊이 미워한 사람이었다. 내가, 누가 서투르게 입에 처넣는 호의 때문에 토할 수도 있구나, 좋은 것들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저렇게 흉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약한 사람의 모든 표정과 몸짓을 혐오하는 습관이 내게도 있구나, 그런 자각이 없었다면 난 조금 낫게 살고 있었을까. 길에서 m을 만날까봐 겁이 난다, m의 실존 자체 때문에 일그러지는 내 표정을 숨기지도 못하면서, 돌아와서 m과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괴롭고 싶지 않아서. 이상한 일이다, 그녀가 가진 것들 중 가장 나쁜 것들을 자꾸 자신에게서 보게 된다. 나는 나를 미워하나,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를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