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어머니는 너무 말라서...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과 남동생을 잘 안아 주지 않았지만, 어린 당신 역시 당신 어머니의 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절에 나가던 어머니에게선 늘 대웅전에서 나는 향 냄새가 났다. 당신 어머니에게 안길 때마다 당신은 바스락 소리를 낼 것 같은 어머니의 뼈들과 목에 여러 겹으로 걸린 말라비틀어진 염주알들이 불편해 몸을 뒤틀었다.
당신의 첫 여자 역시 당신 어머니처럼 말랐었다. 당신이 손아귀로 움켜쥐었던 그 여자의 허리, 윗니에 부딪치던 그 여자의 마른 갈비뼈를 당신은, 기억한다. 당신의 첫 여자는 바람에 날려간 것처럼 곧 어디론가 사라졌다. 당신의 남동생은, 살아 있던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내내 거의 먹지 않았으므로 따라서 결코 살이 붙지 않았다.
당신의 손바닥, 당신의 손바닥에 새겨진 복잡한 손금들은 모두 몹시 가늘다. 당신의 손바닥은 미로처럼 구겨져 있으며, 당신은 그것을 읽을 수가 없다.
당신은 오랫동안 어떤 것도 읽지 못했다. 당신의 한쪽 눈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읽는 행위는 당신의 눈을 쉽게 지치게 한다. 첫 안경이 깨어진 날을 당신은 기억한다. 바닥에 흩어진 유리조각들 위로 무질서한 햇빛들이 꿈틀거렸다. 당신의 흩어진 시선이 하나의 요철이었던 날을 당신은 기억하고 있다.
밤에 잘 잠들지 못했던 것은 당신 뿐만이 아니었다. 늦은 밤, 당신의 집은 고요했지만 누구도 잠들어 있지 않았다. 같은 방을 썼던 당신과 당신의 남동생은 이야기를 거의 주고받지 않았다. 당신이 책상에 앉아 오늘의 복습을 하고 있으면 당신의 남동생은, 바닥에 깔린 이불에 누운 채 라, 라, 라 중얼거리며 발로 다락 문을 여닫는 장난을 쳤다. 삐익, 삐익, 다락의 녹슨 경첩은 듣기 싫은 소리를 냈고 당신은 와락 화를 내곤 했다. 모자란 새끼. 다락의 문은 잘 닫히지 않았고, 당신은 이따금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눅눅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당신의 가슴 속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밤중에 목이 말라 까치발로 부엌 쪽으로 갈 때면, 안방 안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중얼거리며 읊는 염불 소리가 들렸다. 그런 밤, 아버지는 늘 없었다. 당신의 어머니는 대문을 잠그지 못하게 했다. 열린 대문으로 아버지는 아주 이따금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아버지를 차가운 길거리로 쫓아내는 상상을 했다. 때로는 아버지의 몸에 찬 물을 끼얹고 대문을 잠가 버리고 싶은 충동을. 당신은, 그러나 결국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가 밤새 얼어 죽기를 바라는 날마다 당신은 대문을 열고 나와 별들이 녹슨 못들처럼 박힌 밤거리를 혼자 걸어다녔다.
당신은 이따금 어떤 일들을 회상하며 짙은 죄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유효하지 않다. 당신은 윤의 화장대 위에 곤충의 허물처럼 널려 있던 플라스틱 약 포장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들은 이따금 건드리지 않아도 소리를 냈다. 내 동생을 알아? 당신은 윤의 머리카락 속에 얼굴을 묻은 채 물었다. ......자주 여기에 와요. 당신은 천장의 무늬들을 바라봤다. 윤의 방 천장은 초등학교 교실처럼 옴폭한 무늬들이 새겨진 블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신은 몸에 잘 맞지 않는 걸상 위로 몸을 젖히고 천장의 무늬들을 헤아렸던, 당신의 어렸던 시절을 기억해 냈다. 갈매기 같지 않아? 저건 무슨 모양일까. 윤은 몸을 움츠렸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 동생을 알아요. 얘기해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는 말을 하지 않아, 하고 당신은 말했다. 윤은 다시 한번 으쓱했다. 당신은 윤의 거대한 어깨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내 동생이 당신을 좋아한다니 의외인걸. 그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아. 그러다 당신은 윤의 침대 밑에 떨어진 이 노트를 본다.
당신의 남동생은, 죽었다. 당신의 남동생을 떠올릴 때마다 당신은 아직도 그의 짧게 깎은 머리와 겁먹은 눈을 떠올린다. 당신의 기억 속에 있는 남동생은 항상 빵을 먹고 있다. 남동생이 죽은 건 네 아버지 때문이라고, 당신의 어머니는 말했다. 어느 겨울, 아버지가 돌아왔다. 그것은 하나의 돌연한 사건이었다. 당신이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대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자 당신은 일을 막 마치고 돌아온 당신의 어머니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고개를 들지 않고 동생의 밥그릇에 밥을 꼭꼭 눌러 담았다. 그러나 상을 차리기도 전에 당신의 방 쪽에서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달려갔다. 거기 낯선 아버지가 있었다, 당신 남동생의 뺨을 후려치는 중이었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웅크린 남동생의 등을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왜 이래요. 미쳤어요? 당신은 아버지의 양 팔을 거칠게 떼어냈다. 당신의 남동생은 바닥에 걸레처럼 쓰러져 있었다. 도대체 왜 이래요, 당신은 아버지를 벽에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다. 아버지는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저 자식이 나를 물어뜯었어, 그러면서 손등에 난 선명한 잇자욱을 당신의 눈 앞으로 들이민다. 당신은 아버지의 멱살을 잡는다. 코끝에 걸려 있던 당신의 안경이 그 와중에 바닥에 떨어져 온통 조각난다. 현기증, 당신이 무의식중에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당신의 흐린 시야에 있는 것들은 온통 깨져 있었다.
... 개새끼처럼, 아버지는 죽은 자신의 자식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살점을 물어뜯었다고. 그리고 아버지는 당신에 의해 처음으로 대문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밤이었다. 당신의 남동생은 이미 방 안에 없었다.
지금, 당신은 시계를 보고 시침이 한 시를 가리키고 있음을 안다. 당신 앞에는 피스타치오 부스러기들이 잘게 부스러진 돌조각들처럼 흩어져 있다. 윤, 윤은 매일 밤 가게의 문을 닫고 나면 남은 빵들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하나도 남김없이. 빈 빵봉지들은 빵집 쓰레기통에서 빛바랜 종이꽃처럼 바스락거렸다. 당신이 그것을 알아차린 날, 윤은 울었다.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윤은 가게 화장실에서 손가락을 목 속으로 넣어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낸다. 윤의, 탄력 없이 부들거리는 마들렌 같은 살갗을 당신은 이제야 납득할 수 있다. 연민은 사랑이 아니지. 당신은 그런 식으로 사랑이라는 말을 발음했다. 윤은 또 울었다. 이따금 당신은 그저 괜찮아, 하고 중얼거렸지만 당신은 의아해했다. 윤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윤에게 온 것이었을까. 윤은 아귀처럼 먹어댔다. 이제 당신을 둘러싼 것들 중에서 당신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는 것은 거의 없었다.
당신의 남동생은 그날 돌아오지 않았다. 당신은 동생이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동생을 찾아 골목을 돌아다니지만, 당신의 어머니는 갸가 아무리 덜 됐어도, 집 찾아 올 줄은 알겠지, 하고 말했다. 그녀는 여래 같은 억지미소를 짓는 법을 배웠던가. 아버지는 다시 나가 다음 날 동생의 죽음이 전해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당신의 남동생은 다락에서 죽어 있었고, 그것을 먼저 발견한 것이 누구였는지 당신은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이 기억하는 것은 그 장면이 주는 어떤 선명한 인상이었다. 당신의 동생은 녹슨 가위로 목을 스스로 난도질했다. 아무것도 온전히 발음할 수 없고, 삼킬 수도 없던 목. 당신은 지금도 기억한다. 먼지투성이의 다락에 흥건히 고인 죽음의 색. 밝다. 피가 사방으로 튀어 있었다. 당신은 결코 당신의 어머니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아직도 마르지 않고 남아 있는 감정이 있었던가. 당신은 까끌까끌한 남동생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받친다. 이렇게 가벼운 머리를 가진, 당신의 부끄러운 남동생.
그리고 이뇨제와 하제를 규칙적으로 복용하던 윤과 당신의 관계는 그 죽음과 더불어 끝이 났다. 윤은 자주 눈물을 글썽였다. 윤의 눈가에 희미한 주름들이 가득하다는 사실, 당신이 윤에게 동생의 죽음을 전했을 때 윤은 뒤돌아 선 채 롤케익을 자르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당신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윤의 손놀림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런가요. 사이를 두고 윤이 덧붙였다. 그렇군요. 윤은 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때 당신은, 어떻게 당신이 저런 윤을 사랑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이 오늘의 방문을 마치고 문을 열고 나가면 윤은 저 롤케익들을 삼킬 수 없을 때까지 입 속으로 밀어넣을 것이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달려가 소리내며 토해내리라. 당신은 이 빵집 안에 가득한 공기를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을 갑작스레 깨닫는다. 그러나 어쩌면 저렇게. 윤은 말없이 빵 접시를 내려놓고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른다. 당신은 윤의 뒤를 따랐다. 윤의 치맛자락이 당신의 눈 앞에서 부스럭 부스럭 움직이는 동안 당신은, 윤의 오금이며 장딴지 피부가 온통 터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윤은 아직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날 싫어하게 되었군요.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지만 윤은 또 말했다. 다시, 안 올 거죠.
당신은 몸을 돌려 혼자 계단을 내려왔다. 당신이 콘크리트 계단에 한쪽 발을 딛는 순간, 당신의 콧속으로 익숙한 냄새가 훅 끼쳤다. 빵 반죽이 부푸는 냄새. 당신의 머릿속에 샛노란 빵이 그려진다.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린, 차라리 구멍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 같은.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견디지 못하고 당신은, 빵집의 유리문을 거칠게 밀어내는 동시에 게워냈다. 당신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당신의 머리 위에서 벨이 울렸다.
지금, 당신은 힘겹게 기대듯 문을 연다. 문 위에 달린 조그만 종은 여전히 덜그럭거리고 있다. 당신은 피로를 느낀다. 당신은 어젯밤에도 잠들 수 없었으므로. 당신은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당신의 불면은 만성적이다. 당신이 카페 밖으로 나온다. 순간 당신의 눈 앞이 온통 밝다. 흰빛이 섬광처럼 당신을 향해 돌진한다. 당신은 고통보다는 슬픔에 가까운 감정에 휩싸인다. 당신은 당신이 쓰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뺨에 닿는 희고 가벼운 눈송이들을 당신은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외투 주머니에 든 이 노트의 단단한 모서리도 느낄 수 있었다. 윤과 당신의 남동생은 이 노트로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을까. 당신은 왜 윤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당신은 어쩌면 윤 역시 사라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당신의 죽은 남동생은, 물론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아귀에 관한 커다란 판형의 그림책을 산 적이 있었다. 아귀는 앙상한 흉곽과 푹 패인 두 눈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의 남동생은 아주 가끔 당신의 앞에서 그 책을 펼쳐 보이며, 무서워, 하고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당시에도, 아귀에 관한 악몽을 꾸기엔 너무 많이 자라 있었다. 당신이 아귀의 모습에서 느낀 것들 중 가장 강렬했던 감정은 엄숙함이었다. 아귀의 커다랗게 벌린 입은 검은 동굴을 연상시켰다. 당신은 달콤한 물방울이 정수리로 떨어지는 감각을 느낀다. 당신의 동굴은 열반, 혹은 죽음, 먼 곳이란 말들과 닿아 있다. 그것들은 더할 나위 없이 진중하며, 어떤 면에선 희미한 공포를 자아내기도 했다. 당신의 모든 말들은 사방으로 부딪쳐 흩어진다. 후에 당신이 외경이란 단어를 배우기까지, 당신은 그 침묵, 격렬한 동요를 감춘 동굴 속의 고요가 엄습할 때마다 아귀, 하고 소리내어 발음했다. 그것은 참으로 읊조리기 좋은 단어였으므로.
무섭긴 뭐가 무서워, 바보. 당신이 남동생을 밀어냈다. 물론 당신의 남동생이 말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어린 그는 밥 먹기를 두려워했고, 앉아서 먹는 일 보다는 들고 다니면서 한 숟갈씩 입으로 가져가는 편을 나아했던 아이였지만 입을 다물고 움츠러든 미소만 짓진 않았었다.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어린 남동생은 잠들 때마다 당신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길 원했다. 당신은 시큰둥하게 그의 손을 붙들고 있다가 손금을 타고 땀이 고이기 시작하면 조심스레 손을 놓았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당신의 남동생은 반짝 눈을 떴다. 어디 가지 마. 그러면서 그는 당신을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내곤 했다. 다시 올 거지?
비록 잠에 빠지는 것은 힘겨웠지만 일단 잠이 들면 당신은, 가라앉는다. 깨어 있는 동안 늘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던 팔다리는 한없이 가벼워지는 동시에 힘없이 깊숙한 곳까지 가라앉는다. 그 다음에 당신에게 남은 일은 흔들리는 것뿐이다. 깨어 있는 동안 당신은 늘 어딘가를 향해 흘러간다. 흐름은 흘러가기 위해 그 전에 어떤 과거로부터 흘러와야 함을 전제한다. 당신은 흘러간 자리가 텅 비기 전에 다른 흐름은 곧바로 찾아온다. 당신은 흐름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잠들 때의 이 안일한 흔들림.
당신은, 가능한 한 흐르고 싶지 않다. 물 표면에 있는 당신은 무수한 물이랑들 중 겨우 하나나 둘에 불과했다. 직진하던 빛은 당신에게 부딪쳐 난반사한다. 당신은 흔들리고 싶다. 사실 당신은, 죽고 싶었다. 당신은 죽음과 가장 비슷한, 이상적인 방법으로 잠드는 법을 알고 있다. 눈을 감고, 어떤 꿈도 꾸지 않는 것. 이 노트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씌어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