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난

진흙 얼음 2011. 2. 20. 07:05


 기분이 엉망진창이던 며칠 동안 <메리 포핀스> 속편 원서를 읽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나는 메리 포핀스 속편의 번역자가 되는 것을 갈망했었다. 열 살의 나는 메리 포핀스에게 미쳐 있었고 떠난 그녀가 속편에서 돌아온다는 것, 이 시리즈가 자그마치 일곱 권이나 된다는 걸 알았지만 속편을 번역한 사람은 없었다. 영어로 된 책을 읽을 수도 없었고, 그런 것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도 몰랐으며, 그런 것을 살 만한 돈도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았다면 아마 크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만족할 거다. 좋아하는 물건들이 잔뜩 있는 방 안에서 부모 없이 살면서, 마음만 먹으면 외국에서 책을 주문할 수도 있고, 노력만 한다면 몇 개의 외국어로도 책을 읽을 수 있다. 나는 돈과 시간이 있다면 할 수 없는 것이 거의 없는 어른이 되었다. 언제나 동물을 기르고 싶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그럴 수 없었고, 자라서 고양이를 사랑하고 고양이와 같이 살게 됐다. 작가가 되고 싶었고 난 뭐 절반쯤은 됐다고 생각한다. 배우도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상상한 것보다 더 많은 연극을 보았고 인생은 기니까 언젠가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딴 얘긴데 <메리 포핀스>는 이십대 후반에 읽어도 존나 재미있다 뽀로로가 다 뭐냐 
  



 등록금 납부일을 이틀 남겨놓고 있자니 뭐라도 꽉 물고 싶다. 복학신청을 했고, 학자금 대출승인을 받았고, 이제 대출을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 학자금 빚의 이자를 꼬박꼬박 갚고는 있지만 원금은 거의 줄지도 않은 채, 주당 30시간으로 계산되는 조교들을 해도 생활비를 쓰면 원금을 갚을 여력이 없다. 수입과 지출이 옥신각신하는 과정을 보면 참으로 투명하다 싶다.조교 하나가 줄자 집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조교를 늘리자 공부하는 시간이 줄기 시작했고,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하자 잠이 줄기 시작했다. '공부만' 열심히 했던 짧은 기간이 있었고, 그 때는 친구가 없었다. 집세를 밀리면 안된다, 특히 곧 이사를 나가야 하는 지금 같은 시점에는 더욱 더. 학교를 다니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행정일밖에 없는 것 같다. 과외? 나는 과외도 많이 했었다. 인접한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서 과외 두 개를 연달아 하기 위해 낮 수업이 끝나자마자 버스를 타러 달려가던 길, 내 인생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외 세 개를 하면서 비는 날에 주 삼회 학원강사를 하던 짧은 날들도 있다. 끝나면 잽싸게 막차를 타야 했다. 첫날에 거울을 보니 코피가 나고 있었다. 그래도 그 때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든 책임졌다. 월세들이 밀리고 있었지만 모두 갚았다. 그 시절에 씀씀이가 컸었나 생각해 봐도 사실 난 잘 모르겠다. 미용실에서 염색을 하는 것이 굉장히 큰 돈이었던 것과, 보고 싶은 연극이 있었는데 가진 돈으로는 이층 뒷좌석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에 서러웠고, 그 정도다. 언제나 내 친구들과 엇비슷하거나 조금 떨어지는 생활수준이었다. 지금도 바라는 건 별로 없다. 마음 내키면 비행기표를 사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돈이 언제나 통장에 들어 있길 바라진 않는다. 다만 빚이 없고, 고양이들을 굶기지 않으며, 제철채소를 사서 요리를 하고 주말에는 연극을 봤으면 좋겠다. 값비싼 오페라나 뮤지컬이 아니라 그냥 연극. 지금 내게 채소를 살 돈이, 연극표를 살 돈이, 고양이밥을 살 돈이 없다는 게 아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으니 돈이 있는 기간에는 아마 다른 걸 아끼면 뮤지컬도 여러 번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건 내가 그런 식으로 쭉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확신하는 것. 
 난 밥벌이를 원한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산다는 뜻은 아니지만, 밥벌이하는 인간은 자기를 책임지는 인간이고 거기서부터 다른 모든 게 시작된다. 난 지금 밥벌이 못 하는 인간이고,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가고 다음 달을 위해 저축할 수 있기 전까지는 생활이 얼마나 나아지건간에 계속 그렇게 느낄 거다. 나는 지금 생활에게 얹혀 살고 있어서 먹은 밥이 다 얹힌다. 


 행정근무를 하고 싶지 않다. 나는 행정업무에 소질이 없고, 할 생각도 없었다. 영수증 처리 같은 건 나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런 일은 결코 하지 않았을 텐데, 어쩔 수 없었다. 그 일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아마 나에게 일을 맡긴 사람도 불행해지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쩌면 할 수 있는 다른 몇 가지 일들보다 시간을 아끼는 일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결국 나는 더 불행해졌고, 제정신이었다면 마음을 낭비할 필요 없었을 일의 실패 때문에 스스로를 작고 무능하게 느끼는 날들이 있었다. 


 낼모레 빌려야 할 등록금과, 친구(내 친구들 직업은 전부 조교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실직조교다)와의 저녁 통화에서 느낀 어둠과, 어제 너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이년 내내 지속된 나의 눈물 등등에 대해서 한참 썼는데 어떤 부분의 위악을 견딜 수 없어서 지웠다.
 그런데 그냥은 잘 수 없어서 또 다시 쓴다. 
 복학은 해야지. 복학할 거다.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다음 주에 장학재단이 마음이 바뀌어 내게 돈을 빌려주려는 생각을 접지 않는다면 나는 등록금을 낼 거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내가 정확히 왜 복학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지금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 한 과목이 남았을 뿐이다. 종합시험에 통과하면 수료를 한다. 
 그러나 그게, 내 일이 아닌 격무에 시달리며, 일한 대가를 손에 못 쥐거나 혹은 남의 돈을 빌려서(마찬가지로 손에 쥐지 못하고), 생활수준을 망가뜨리며, 늘 이상한 참담함에 젖은 채로 지내는 것에 대한 응분의 보상인가? 늘 가난하고, 늘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고, 늘 준비태세고, 왠지 스스로를 도시빈민이라 느끼면서...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나는 자주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내 삶은 늘 충분히 좋았다. 내가 살면서 저지른 실책들과 별개로 나는 충분히, 제대로 살았다.
 공부를 시작할 때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이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치르는 희생이 얼마나 클지 모르기도 했으나 무엇이건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애초 나는 일하지 않고 학교를 다닐 만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편한 걸 기대하진 않았던 데다가, 이미 어느 정도 내 생활을 벌어 먹여 살리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그게 이런 식으로 찢겨나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인생의 절차들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래도 내가 나 자신에 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갈 곳이 없거나 무언가 다른 일을 준비하려는 임시 거처로서 여기 온 적 없다. 그러기엔 난 하고 싶은 일이 언제나 너무 많고 또 분명했다. 적당히 버티려는 생각으로 어딘가에 들어가기에 난 너무 많은 일들에 불성실했고, 해야 하는 일에 전심전력으로 집중하는 것으로 여타의 불성실에 어느 정도 책임을 진다고 여기면서 살아왔다. 


 대학원에 지원할 때 쓴 연구계획서를 3학기를 막 끝낼 때쯤 우연히 발견하고 울고 싶었다, 아니면 웃거나. 학부 졸업반이던 내가 말하길 나는 시적인 동기로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주류문학이 내어놓는 변방들에 관한 역설적 자유에 매력을 느꼈기에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내가 왜 시가 아니라 희곡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단락도 있다... 학부 시절은 문학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의 시간이었고,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싶은 이유는 수업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무척 즐거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졸업 후 희망은 '오래 공부하고 싶고, 공부한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소용이 닿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빼도박을 수도 없이 적혀 있다. 기타: 학부 내내 좋은 학점을 받지 못했지만, 학점에 대한 강박 없이 자발적으로 즐겁게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왔다. 이 연구계획서의 마지막 문장은 '공부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다. 아무리 자의식을 줄이려고 해도 자기 자신이 사랑스럽고 미워서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있는데, 3학기를 마친 여름에 이 연구계획서를 발견했을 때 바로 그랬다. 자신이 불가항력으로 정직하고 멍청했던 어제를 마주칠 때 그러하다. 이 연구계획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개소리다. 그리고 그 개소리를 하던 나는 너무 진심이었다. 
 학부를 졸업할 때 나는 공부를 좋아했고, 즐거워했다. 그래서 대학원을 미워하게 됐다. 그 일을 이렇게 끔찍한 것으로 바꾸었다는 것을 한동안 믿을 수 없었고, 이제는 믿기 때문에 미워한다. 그리고 내가 정말 나 자신으로 있으려면 학교를 그만두는 게 옳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더 이상 즐겁지 않은 일을 하느라 큰 돈을 지불하고, 지불할 돈을 벌기 위해 마음을 낭비하는 나쁜 연쇄를. 영수증 처리 같은 일들을 하면서 몇 번이나 누구나 싫은 일을 한다고 그러면서 다 사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사실은 거짓말이다. 나는 싫은 일을 안 하기 위해 덜 싫은 일을 견뎠고 좋아하는 일을 더 열심히 했고 그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제 와서 싫은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거짓말들, 단 3학점이 남았고 수료가 목전이고 논문을 쓰고 싶어서 돌아간다는 거짓말. 받는다 치자, 그걸 어디에 쓸 것인가? 나는 애초 학위를 받아서 쓸 곳이 없었다. 대학에 임용된다거나 하는 미래를 꿈꾸기에 나는 내 친구들을 제외한 모든 대학원생들을 미워한다, 이런 이상한 일에 가담하고 있다는 죄목이고, 그 죄에서 나와 내 친구들도 자유롭지 않지만 죽을 만큼 고민했기 때문에 우리 죄는 가볍게 해 주겠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나는 교수나 연구원 같은 직업에 대한 편견이 조금 생겼다.    
 나는 논문을 쓸 것, 그리고 남들이 석사논문에 들이는 열정이 얼마만한 것이며 얼마만한 것이 적당한가 그럴 필요가 과연 있는가 하는 문제와 무관하게 내 것은 무척 아름다운 것이 될 거라고 공언하던 나날들이 있었지만, 그건 실패한 사람들이 걸작을 남기면, 그 걸작이 저주받건 아니건 간에, 자기 인생의 나쁜 부분들이 자신의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 안에 모두 편입될 거라고 또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것들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다.   


 공부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소용이 닿는 것이 중요했고 어떤 미친 이유로 그러기 위해 대학원에 오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라고 여겼으나, 일개 대학원생의 석사과정 이수가 다른 사람에게 소용이 닿으려면 그 대학원생은 반드시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이제 행복하지 않고, 그건 대학원 생활이 내게 남긴 족적이며, 그런데도 나는 맹목적으로 이미 죽은 자를 구하러 가는 사람처럼 복학을 한다는 것, 밥은 벌어야 하고... 왠지 나는 학자금 빚을 진 사람이 되어 있고... 자꾸만 내가 못하는 일들을 확인하면서 그래도 그 일을 꾸역꾸역 해야 하고... 이 모든 건 전부 내 개인적인 불행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행 때문에, 이제 나는 혁명시가 정말 인생을 상징적으로나마 구할 수 있을지 문학이 무엇에 소용에 닿긴 하는지 모르게 됐다. 나는 많은 시를 읽었고 갈수록 더 많은 시를 읽게 되었는데 그건 내 삶을 구하지 못했다. 집세의 체납에서도 병에서도 고양이들의 죽음에서도 구하지 못했다. 차라리 시가 나를 이끈 곳은 영수증 처리업무였고 그 다음으로 이끈 곳은 영수증 처리업무에서 잘려서 실업한 위치였고 그래서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해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쓸데없는 피로의 지점으로까지 이끌었다.  

 여기까지 다시 읽어보니 존나 유서처럼 보이지만 그건 내가 한동안 죽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의 냄새를 채 못 거둔 것이고 죽기에는, 해야 할 러시아어 숙제도 남았고 러시아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빨리 러시아어로 책도 읽고 편지도 쓰고 싶고, 결정적으로 어차피 죽는다면 집세를 체납한 채로 죽기는 정말 싫고... 학교를 휴학하는 게 왠지 너무, 억울했던 것처럼, 즉 내가 공부하기 싫거나 공부할 능력이 부족해서 도망가는 게 아니라고 써붙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처럼, 나는 지금 분명히 절망하고 있지만 그래도 명예롭고 싶고 내 명예를 알리고 싶은 거다. 어디서부터 잘못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지금 잘못된 상황에 놓여 있고, 그런데 애초에 길을 들 때는 온전한 정신이었으며 옳은 단 하나의 선택이었다고. 그런데 그게 나를 죽이고 있다고. 

 왜 내가, 공부를
 이번 생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난 왜 복학하는 걸까? 

 다른 이유는 없다. 학자금 빚 외에는 학교 다니느라 빚진 것 없고 걱정해준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학교 다니는 걸로 갚을 일은 아니다. 아마 난 나 때문에 복학하는 걸거다. 학교에 다니고 싶었고, 한동안 버텼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마음을 쉽사리 무시하기에는 지금의 내 마음이 너무 약하다.   
  

 나중에 대학원 시절의 학교생활에 대한 평가가 조금 나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일어난 일들은 변하지 않는다. 학교 다니는 내내 거기가 지옥이라고 생각했고 공부를 좋아했기 때문에 달콤한 순간들이 있었으며 때로는 남들 다 마신 우물물을 나도 마시며 애써 달콤하려고 했고, 그래도 달콤한 순간들이 더 있었다면 그건 그 지옥에서 최저수준 만큼은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에 느끼는 기쁨이다, 그뿐. 그밖에 영문과 석사과정에서 어떤 교훈도 얻고 싶지 않다. 이 일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교훈이라면 안전한 선택을 하라는 것, 혹은 무엇도 너무 최선을 다하지 말고 절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하라는 것 정도가 될 것인데, 지금 내게 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그런 것들이 결코 내 삶의 강령이 되지 않게 할 작정을 하기 위해 내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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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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