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생각

진흙 얼음 2010. 10. 26. 05:55

걷는 내내 담배꽁초를 버리며 갈게 해가 지면 
점점이 뿌려진 흰빛을 보고 날 찾아와야 해 꼭 찾아줘야 해 
아니면 말고, 원망은 안 한다.  

오늘 밖에 나갔는데 드디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아, 겨울만 있는 나라에 가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사모바르 주둥이로 나오는 수증기에 얼굴이 녹아서 눈물을 흘리거나, 덧신을 신고 돌아다니다 순무를 넣은 뜨거운 보르쉬나 끓여 먹을 수 있다면. 아니면 손끝을 잘라낸 캐시미어 장갑을 끼고 담배나 피고 싶다, 이런 계절에는, 나갔다 들어오면 눈이 반짝이고, 문을 열고 뛰어드는 순간 목에 걸려 있던 바람이 절로 풀려내려오는 것이다. 응, 좋아, 고양이가 가장 따뜻한 계절. 난방기 앞에서 무엇을 덮고, 덮고, 덮은 채로 귤을 까 먹고 귤껍질은 손 닿는 데 버릴 것이다. 나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좋아하는 식성으로 바뀔 것이다. 얼굴과 머리카락에는 바셀린을 바르고. 끼릴 문자로 이름을 쓸 거다. 검은 털가죽 모자로 억지로 무엇을 꾹꾹 눌러 놓고 나는 보드카나 마시고 사교라면 러시아 무곡에 맞춰 공격적으로 춤추는 것뿐, 아니면, 

지금 당장 핸드폰 끄고 침대 밑의 악어 입으로 들어가고 싶지. 그러나 그런 짓은 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다른 걸 바라자, 즉 추운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 성에 낀 유리창이 무섭게 덜그럭거리고 능선에서 내 창문 앞까지 흰 눈 위에는 주둥이에 피 묻은 짐승의 더러운 발자국. 빨래를 할 수가 없어, 전부 얼거든. 옷에 눌려 죽을 때까지 옷을 껴입고 아무에게나 파고들며 그렇게 살면 좋겠다. 죽어도 좋고. 그러나 그런 걸 바랄수록 다른 것들을 아낌없이 주는 것이 삶의 습성이다, 질척이는 늪을 지나왔더니 열대병에 걸려 있었고 태양열에 썩어가는 처마 밑에서 앓고 있는데 손가락만한 도마뱀들이 뚝뚝 떨어지는 거다, 뚝뚝, 죽을 때 길가에 바나나가 열리는 동네에서 죽는다니 엉망진창도 이런 엉망진창이 어디 있을까. 밀려오는 토기와 요의 속에서 죽을 때도 하필이면 고열로 죽겠지.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배를 환히 드러내놓은 채 날벌레들에게 시야를 점거당하는 일 얼마나 끔찍한가, 지옥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핸드폰 끄고 침대 밑의 악어 입으로 들어가고 싶지, 그 악어는 물론 아열대의 늪지대에 사는 악어다. 가죽에 상처가 나서 지갑이나 벨트가 될 염려가 없음을 자랑으로 삼으며, 턱의 악력으로 무엇이나 으스러뜨리는 악어, 그 안에서 다진 마늘처럼 으깨졌다. 찌꺼기와 즙으로 분리되었다. 범람하는 햇살, 어제는 그리스 비극같은 것을 썼다. 자물쇠가 걸린 철제 캐비닛 안에서 푹푹 썩어가는 고양이의 소유주로서 삶을 시작하는 것에 관해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나서도 그 오래된 슬픔이 여전히 찢을 면적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삶이 썩어 문드러진 다음에도 언제나 삶에는 썩기에 충분한 양분이 있다는 것과 결국은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겨울만 있는 나라에서 살았으면 좋겠네, 너무 추워서 화로에 끝없이 장작을 집어넣고... 넣다 보니 추운 자기 자신까지 집어넣고... 혹은 도끼로 장작을 패다가 자기 자신을 절반으로 나눠 버리는... 자물쇠가 걸린 철제 캐비닛의 열쇠는 악어가 삼켰고 캐비닛은 붙박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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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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