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선생

진흙 얼음 2010. 10. 25. 23:35

 마술선생의 팔은 네 개로 분열했다. (꿈에서) 살면서 나는 자주 A같은 소년들을 좋아하기로 결정하였다, 건전하고 진지하며 웃을 때 예쁘고 그늘이 없는. 면바지에 로퍼를 신고 얼룩 하나 없는 반팔 폴로셔츠에 긴 자켓을 걸치고, 그런 소년들은 절대 꿈에 나오지 않는다, 지옥에서가 아니라 난관에서 구하는, 그리고 내게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는.

 남동생의 결혼식 꿈을 꾸었다. 우리 모두 바라던 순간이었다. 내 아버지, 평생 모범시민이었으니 이제 모법시아버지가 되리라, 그의 직위가 담보하는 안전이 마침내 가정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인 거다. 긴장한 표정으로 하객들을 맞을 아버지가 '새아기' 에게 얼마나 다정할지 불 보듯 뻔했다. 불 보듯, 아버지가 평생 바란 것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새-아기 아니었나. 
 자유로워지기 위한 마지막 절차는 축가를 부르는 것이었다. 아, 아빠, 이건 꿈이잖아요, 꿈 속에선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 목소리를 잃는답니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내가, 시큰둥한 동생의 아내에 대한 끓어오르는 경멸을 애써 감추며 면세점의 잡다한 화장품들을 안겨주는 일, 우리가 너를 위해 하는 이 모든 일들이 마치 이골이 난 일이라는 듯이,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에 몸을 바닥에 던지는 일들을 하며 자연스럽게 행세하는 일. 

 마술선생의 웃기지도 않는 분열과 확장 속에서, 그녀는 신체절단 시범을 보일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A를 의식하며 내가 손을 들자 B가 나섰다. 의아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이건 꿈이니까. B에 대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사실은 내가 그 애의 머리를 때리고 나서 내가 한 일에 깜짝 놀라 얼어붙었던 것이다. 내가 용서받았었나? 같잖은 마술선생과 마술교실,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맹금들, 사차원이라는 눈속임 속에서 B는 내게 거대한 잔을 내밀었다. 보드카 온더락이었는데 그 안에 마술선생이 기억을 잃는 약을 짜넣었다. 웃기지도 않다는 말을 천 번 정도 하면서 무서운 눈의 B 앞에서 그 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팔할을 마셨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걸 다 마시면 어떻게 될까, 이제 목이 아프다고 말하려 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A가 팔목을 붙잡았고, 눈 앞에서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감옥이 열리고 있었는데, 

 저녁을 먹으러 나오지 않겠나는 H선생님의 전화에 깼다. "뭐해요?"
 "나가려고 화장하고 있어요" 거짓말이지만. 
 "자다 일어난 거 아니예요?"
 "그럴 리가요, 지금이 몇 신데요" 몇 신지도 몰랐다.  

 저녁을 먹고 걸어다니며 바지 두 벌과 귀걸이 두 쌍을 샀다. 어쨌거나 꿈에서 난 절반으로 나뉘었으니 두 사람 몫이 필요한 것이다.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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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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