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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5. 10. 09:39

우리 스파이 할머니는 선하고, 용감하며, 솔직하다. 이렇게 적으니 되게 미국맛이잖아. 그래도 정말로 선하고, 용감한데, 솔직하기까지 한 사람은 드문 것이다. 내가 할머니 동년배였다면 이 온갖 영웅적 모험담을 모르고서도 아이 참 진솔하고 담백한 사람이구나 친하게 지내야겠다 했을 것이다. 재치는 물론, 탈출담을 보자면 확실히 나보다는 스태미너가 넘친다. 책을 끝까지 읽기 전에는 안젤라 랜스베리(99년판) 라든지 뭐 로잘린드 러셀(71년판) 면 훌륭한 캐스팅이네 싶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딱히 그렇지가 않다. 아무튼 열렬히 당나귀도 몰아야 하고 절벽에도 매달리고 노도 저어야 하잖아.

대화체가 많아서 톤앤매너를 손봐야 하는데 할머니의 할머니성도 까다롭지만 하필 등장인물들이 대개 군인이라서 골치아프다. 군인 아니면 요원; 아니면 인질; 처음에 잠깐 나오는 의사라든가 옆집 할머니를 제외하면 이름이 있는 등장인물들은 죄다 조직의 위계에 복무하는 남성들이라 할머니가 너스레를 떨다가도 윗사람 권위도 부리고 소녀심도 표출할 만한 그런 말투가 딱 들어맞지가 않는다.

처음에는 할머니를 썩 좋아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내가 원하던 작업 경력과는 색깔이 맞지 않아서 마음 고생이 있었던 게 맞는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일단 사랑스런 사람인 건 틀림이 없고, 색깔이나 방향을 누적하기 전에 나 역시도 흐뭇한 마음에 이끌리는 때가 많다.

아무튼 조만간 스파이 할머니 책은 떠나보내고 책5(코드네임: 테러 책)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전에 논문이 끝났으면.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지만 깊이 생각 안해도 어디 밭에 가서 내 머리를 쏴버리고 싶다. 스트레스가 깊어진 바람에 인제 우울한 감정에 말려들어사는 것도 원천 차단을 바라니 결국 굳이 밤을 새서 200매(논문기준 딴짓)를 하고 마는 것이다. 밤을 새선 안 되는 기간인데(건강이 나빠서 하룻밤을 새면 피부 발진부터 일어난다) 이래저래 자꾸 무리를 하게 되지만 두 달은 더 견딜 수 있겠지. 두 달 안에 적당히 학적을 마무리하고 잠깐 서울 바깥에 혼자 가 있었으면 좋겠다. 가서야 어차피 뭐 '테러 책' 할건데 여러모로 포즈가 필요한 나날이다, 일단 건강 회복이 시급.

Posted by 별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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