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필요한 물건들 (사도 되는 것):
- 캣리터 전용 수거함
- 전동 드라이버
- 요리용 웍
집에 물건이 너무 많아서 어질어질한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 정말 병 걸릴 것 같다. 문제는 이런 거다. 난 고양이들만큼 종이상자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침대 위에 n개의 종이상자가 올라와 있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종이상자에 머리를 넣고 잘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고 살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폴이 거실 서랍장을 뒤지다가 카메라들을 몇 개 찾았는데 그 중엔 십 년 전에 산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있다. 아마 최근 십 년간 쓴 적 없을 것. 어떤 사람들은 티셔츠 하나를 사면 갖고 있던 것도 버리는데, 난 뇌발달 과정의 어딘가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 듯싶다.
얼마 전에는 책장 더 놓을 공간이 없어서, 마음 굳게 먹고 열심히 친구들에게 책을 나눠주었다. 책 팔아본 경험에 의하면 조금의 흠결이라도 있으면 종이값으로 떨어지는 게 책이니 웬만해선 필요한 친구들에게 주는 것이 낫다. 앞으로 전공책이 꾸준히 늘어날 테니 도서관을 이용하겠다고 몇 번 다짐했나. 그래도 책을 스물몇 권 사들인 게 바로 며칠 전이다. 결국 꽂을 자리가 없어서 힘든 시절 우리의 벗이었던 H2 전 17권을 염가에 판매했다. (내놓은지 2분만에 팔렸는데, 나라도 그랬겠다.)
쓰는 필기구는 정해져 있는데도 펜이 한아름인 데다가 지금 눈 앞에 놓인 펀치만도 3공 펀치와 2공 펀치가 각각 하나에 1공 펀치는 세 개 있는 것 같다. 이런 건 아무리 사도 이상하게 부족한 기분이 든다. 쓰는 노트들도 정해져 있는데 한 장 쓰고 말거나 아예 새것인 노트들이 쇼핑백으로 몇 개나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밖의 악순환? 수많은 바디로션과 몇 벌의 트럼프 카드, 아, 아무튼 한 개만 있는 물건을 찾기가 더 힘들겠다. 탁상달력도 백개인데 전부 예쁜 거라서 버릴 수는 없고 스프레이 방향제도 너무 많은데 향이 전부 다르잖아. 리본이나 스티커, 꽃씨 같은 것들도... ㅜㅜ 온갖 작은 기념품들도 마찬가지다. 여성영화제 첫회부터 재작년까지의 기념 배지들 같은 건 왜 있지?
손톱만한 조각품이나 주워 온 예쁜 돌들, 색색의 클립들이며 만화경과 루미큐브에 관한 애호를 버릴 날은 안 올 것 같다. 그래도 해결 가능한 선에서 방책을 생각하지 않으면 삶은 영영 엄살과 충동 속에 흘러갈 거고, 아무튼 조치를 취하기로 폴과 약조.
1. 하루에 한 끼는 선식을 먹고 못 먹으면 폴에게 준다. (반년째 방치된 선식이 4상자)
2. 앞으로 요가매트와 훌라후프를 매일 사용하지 않으면 폴에게 준다.
3. 비타민을 매일 먹지 않으면 오메가3를 폴에게 준다.
4. 책은 깊이 생각하지 말고 알라딘 중고샵에 일괄 판매한다.
5. 하루에 생수 한 병 이상 먹지 않으면 폴에게 책을 한 권씩 준다.
6. 클립과 펜과 종이집게, 각종 바인더, 시트팩, 파우치, 동전지갑, 노트, 마스킹테잎, 포스트잇, 실제로 쓰지 않을 엽서. '헐! 싸다'라는 말이 나오는 모든 물건들, 아이섀도를 더 이상 구입하면 폴이 나를 죽인다.
7. 앞으로 두 달간 한 번도 쓰지 않은 화장품은 폴에게 주고 나머지는 버린다.
8. 꼭 사야 해서 폴에게 허락받은 물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왓슨즈와 올리브영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화장품 로드샵도 마찬가지.
9. 동종의 화장품은 본품과 휴대용 하나씩만 가지도록 한다.
10. 이면지는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