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애도 및 재해복구에 아무리 충분한 시간을 들여도 그런 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불쑥불쑥 나타난다. 어제는 새벽에 비가 왔는데 가만가만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더니 천장이 터져서 그 아래로 자잘한 실패들이 새어들었다. 나는 이를 어쩌면 좋냐고 푸른 방수천을 뒤집어쓰고 '토끼콜크'로 틈새들을 메웠다, 내가 망한 건 어쩔 수 없어, 앞으로도 망할 일들은 망하면서 살 거니까. 하지만 정말로 내가 너무 잘못한 것들은 변명 않을 테니 그냥 조용히 누락하면 안 될까. 이제 어쩔 줄 모르기에는 오래 살아서 그냥그냥, 가만가만 뗏목에 누웠다, 어젯밤의 일이다. 나는 너무 괴로워서 머릿속에 개 한 마리를 기르기로 했다. 이름을 불러주고 귀여워해 주면 짖기도 하고. 던지면 물어오고 앉아, 일어서, 같은 것도 잘 하는 개였다. 털에는 더러운 붓자국 같은 얼룩이 있는데 그건 내가 먹으로 공들여 그린 그애 얼굴 무늬의 연장이다. 진짜 밥이나 진짜 보호 없이도 오래 살고 내키지 않으면 나이를 먹지도 않고 그애의 이름은 개라서 개야 개야 부르고 고양이와는 달라, 산책을 시킬 수도 노년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물루와 오래 살면 난 결국 지나가는 비둘기를 반으로 갈라 나눠 먹게 될 텐데 개와 함께라면 산에 올라가고 그애에게 무릎을 굽혀 your majesty, 예우를 갖출 자신이 있었다. 누워서 머릿속으론 온갖 곳에 다 함께 가려고 했다, 예컨대 개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여기나 저기나... 그런데 이상하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개가 죽었다, 굶어 죽었는데, 
 벽이 접히는 틈새에 거미줄이 있는데 일부러 걷지 않고 지켜보았더니 거미도 다 죽었다. 

 물루를 사랑하고 어제도 방수포 밑에서 내 실패에 맞아죽지 않게 잘 지키고 있었는데 왜 나는 매일 물루 없이 살고 싶을까. 방문을 닫고 혼자 들어앉아 있으면 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얼굴을 봐야 무슨 말을 하지. 인간과 인간의 일에서는 이제 네가 밉고 헤어지자고, 지독한 거짓말이라도 하면 될 텐데, 처음에는 물루가 미운 게 아니라 내 삶을 미워한다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오랫동안 물루를 미워했으니 새삼 그럴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어서 나 혼자 인간으로 태어난 걸 원망한다. 
 물루가 나빠.



 

'진흙 얼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키코모리  (0) 2010.11.24
몰리  (0) 2010.11.23
오지만디아스  (0) 2010.11.23
사랑은 불구  (0) 2010.11.22
브로디  (0) 2010.11.22
Posted by 별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