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깼을 때

진흙 얼음 2010. 11. 1. 05:33

 거대한 청어의 뼈가 눈 앞으로 지나갔다, (아마도 내가 소금을 쳐 구워 먹고 또 중앙아시아풍의 샐러드로 먹었을) 밤에 깼을 때 눈 앞의 밀도는 자맥질도 힘겨운 그런. 덜그럭거리는 내 선실에 앉아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뜻 없는 편지를 쓰는 새벽에, 문득 울리는 네 시 반 알람. (어째서 그런 미친 시간에 내가 나를 깨워왔던고...) 독서대에는 누가 오래 전 피렌체에서 보낸 엽서가 끼어 있다. 여행, 마치는대로 빨리 귀국할게. 한국가면 꼭 꽈악 안아줄게, 그때까지 울지 말고 잘 지내라... 농부의 것 같은 너의 언어 위에 피렌체의 소인이 찍혀 있다. 버릴 책 속에서 찾아냈었다. (너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편지를 썼을지 모른다, 내가 모든 사람이 불현듯 여행을 떠나길, 그리고 일생을 바쳐 내게 편지를 써제끼길 바랐던 것처럼) 

 러시아에서는 여름에 야생화를 엮은 화관을 쓰고 모닥불을 뛰어넘으며 축제한다. 

 가끔 엄마에게 카드를 썼다, 버지니아 울프의 초상화 뒤에 쓴 편지는 어쩔 수가 없어 구겨 버렸다. 



 낮에 싸구려 진을 이것저것에 섞어 마시고 늘어져 있었는데,
 "낮부터 누가 진 마시래, 기분은 '봉봉' 뜨고 몸은 '축축' 늘어지고"
 (하지만 안 마시면, 그 반대잖아.)
 "몸은 봉봉 뜨고 기분은 축축 늘어지고?"
 (응)
 "이 아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문제의 싸구려 진을 새벽 내내 절망적인 필리피노처럼 마시고 있자니,
 코가 삐뚤어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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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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