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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에는,
막걸리를 마셨다. 퇴근길에 나는 어쩐지 부대찌개를 꼭 끓이고 싶은데 y.는 두부김치 만들어다 막걸리 (장수막걸리와 가평 잣막걸리가 반 병씩 남아 있었다)를 마시고 잔다며. 계란 한 판 사려고 마트에 들렀다가 '느린마을 막걸리'가 들어온 걸 보고 한 병 사서 계산하는데, 동네이웃이 '마트에 느린마을 막걸리 들어온 거 봤어?' 하고 전화를 했다. "너 우리가 마트에서 느린마을 사는 거 CCTV로 봤니?" 하고 진심으로 물었지만, 결국 집에서 이웃과 셋이 이런저런 안주거리를 만들어 느린마을 세 병, 남아 있던 막걸리에다 맥주, 전주서 사 온 모주까지 거덜낸 금요일 밤.
토요일 낮에는,
부대찌개를 끓여먹고 낮잠을 자다 출근했다. 유난히 고온건조한 오늘치 봄볕을 낮잠으로 다 날리나, 생각했는데, 창을 다 열고 누웠더니 도로롱 깊이 잤다. 자고 일어나서도 봄볕이 남아 있어서 아니어서 낮에 새로 갈아 온 원두로 얼음 재운 커피를 만들어 물병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얼굴에 부드러운 바람이 닿았다. 모든 것이 딱 좋았다. 서교동을 가로지르며 시들어 비릿해진 꽃 냄새, 길가에 산책 나온 개들이 싸 놓은 희미한 오줌 냄새, 흙먼지, 여자들의 샴푸 냄새, 쓰고 기름진 커피 원두 볶는 냄새를 차례로 맡았다.
참 좋았다.
일은 뜻대로 되지 않지만 일 주일을 묵혀 놨던 이력서를 겨우 보냈고, 데리러 온다는 y.를 조금 기다리다가 독단으로 집에 간다. 작업실에선 조금만 방심하면 마지막 퇴근자가 되는데,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 나는 인제 일촉즉발의 순간이 아니면 밤늦은 시간 일을 하지 않겠다는 애초의 마음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결심. 밤의 홍대 앞 작업실은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 아니다. 다행히 내 자리의 채광이 좋아서 이른 시간 작업이 기쁜 적이 많다.
집에 간다니 기쁘다. 밥 안치고 콩나물 국 끓이고, 감자전을 조금 할까 아니면 백일홍 찐빵을 뜨겁게 쪄 먹을까. 혼자 조용히 맥주나 마시고 책 읽으면서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