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월 독서 & 한 일들
책을 옮기는 일을 하면서 독서량이 갈수록 주는 게 의아했는데, 의외로 그건 직업병과 비슷한 일인가 보다. 특히 올 겨울은 새 작업에 들어가는 바람에 작업 외의 책을 읽기가 더 어려웠는데, 반성하는 의미에서 앞으로 적어두기로. 적어놓고 나니 더 끔찍하다.(r) 표시는 재독.
연말
헬렌 필딩/ 브리짓 존스의 일기 (r)
엘리자베스 토마 베일리/ 달팽이 안단테
소냐 하트넷/ 새들이 보는 것
James Patterson/ Zoo
길리언 플린/ 몸을 긋는 소녀
<달팽이 안단테 the sound of a wild snail eating> 는: 어마어마하게 좋은 책이다. 달팽이가 버섯을 갉아먹은 자국은 작은 빗으로 빗어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하고, 그애들은 사랑을 나눌 때 은색의 작은 침으로 서로를 찌른다고 한다. 달팽이는 미끈미끈한 점액질 때문에 자신의 수천 배나 되는 무게를 일시적으로 버틸 수가 있는데, (자율신경실조증에 걸려 있는) 작가가 한밤중 부엌에서 실수로 민달팽이를 밟는-그리고 달팽이는 개의치 않는-장면을 읽다가 우리가 복족류처럼 진화할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 정말로 울 뻔 했다. 세 번 더 읽을 거다. 그리고 내년에는 꼭 달팽이를 한 번 만져 보고 싶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다시 읽고 싶어서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을 때 샀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고등학생 때, 영화를 본 건 대학교 새내기 때였는데, 브리짓 존스의 나이가 진짜로 가까워 올 줄이야. 서문을 보고 좀 웃었다.
1월
Emma Healey/ Elizabeth is Missing
미야베 미유키/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
미야베 미유키/ 명탐견 마사의 사건일지
피터 비에리/ 삶의 격
이달에 대부분의 시간을 쓴 건 에마 힐리 책을 읽느라. 힐리가 출연한 팟캐스트도 열심히 들었다. 맘에 들고 탐이 나는 책이었는데 일이 성사되진 않음. 비에리의 <삶의 격>을 읽은 건 정말 품도 격도 없는 날이었는데 이음서점에 다녀와 책을 내리 읽었더니 마음이 좀 나았다.
2월
곤도 마리에/ 인생의 축제가 시작되는 정리의 발견
V.C. 앤드류스/ 다락방의 꽃들 (r)
V.C. 앤드류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r)
V.C. 앤드류스/ 가시가 있다면 (r)
V.C. 앤드류스/ 어제 뿌린 씨앗들 (r)
V.C. 앤드류스/ 그늘진 화원 (r)
장 보드리야르/ 테러리즘의 정신
2월 독서목록은 엄청나다. 핑계를 대자면 새 책 두 권을 계약하는 바람에 원고 읽느라 정신이 없었음... 핑계지만... 곤도 마리에의 책은 나의 정리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고, V.C. 앤드류스는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마저 읽는 수밖에 없었던 건데, 여기까지의 책을 심지어 모두 전자책으로 구입했다. (다락방 시리즈 첫 권은 무려 종이책)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은, 학기 종료에 맞춰 반납하느라 제일 얇은 <테러리즘의 정신>밖에 읽지 못했다. 아무튼 3월에는 좀 더 나은 독서를 하며 살도록.
1월
- 오랜만에 함안에 내려갔다가, 부산에 가서 상희와 지수와 같이 있었다. 행복하고 그리웠음.
- 연극은 <치킨 게임>, 그밖의 행사는 304 낭독회.
- 퀴어세미나가 하루. 동인련 보고서를 읽었다.
- 린다 맥카트니 전도 봤네.
2월
- 계약 (4번, 5번)
- 연극은 <디스 디스토피아>, 영화는 <가족의 친구>, <킹스맨>
- 퀴어세미나 MT를 다녀왔다, 여주 1박 2일
- 구정 연휴에 혼자 토요코인에서 잤다;; 이 일이 패턴화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
2월이 다 지나도록 연하장을 못 부쳤다. 변명을 하자면 정말 바빴음. 바쁘기만 한 게 아니라 마음을 어찌나 내기 힘들었던지, 올해는 일기장에도 손을 못 댔다. 주소만 써둔 카드들을 노트 안에 꽂아둔 채로 두 달을 그냥 보내면서도, 진정한 신년은 구정이지! 했는데, 문제의 구정 연휴에는 크게 앓느라 카드는 커녕 원고도 못 했다. 그럴 때마다 뭘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길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남들이 일하는 이유랑 똑같은 이유로 일을 하는데, 그 중에서 내가 할 수 있고 좋아하기도 하는 일을 선택했으며, 그 일에 대한 보상이 적은 대가로 출퇴근의 노고가 줄어들었다. 끝. 카드는 내일 정말로 쓸 것이다.
예전에는 친구 한 명(한 명이어야 한다. 여러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분산된 시간을 보냄)과 마주앉아 커피나 술을 마시면서 저녁 종일을 보내는 일만큼 좋아하는 게 없었다. 지금은 그게 가장 힘들고. 예전엔 사람을 좋아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는데, 글쎄, 지금은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다. 전엔 대체 내가 몇 명과 그런 시간을 보냈나 세어봤더니 1월에 18명, 2월에 19명, 그런 식이었다. 물론 중복 없이. 이제는 너댓 명이 고작이고 그조차도 사실 상쾌한 경우는 딱히 없다. 꾸준히 만날 만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오랫동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좀 어렵다. 지금 일어나는 좋은 일들이 지금까지 해온 일의 결과인 것처럼, 지금 힘든 일 역시 지난 한두 해 간 제대로 못해온 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겨레에 실렸던 노승영 번역가의 글을 읽었는데, 번역이라는 일을 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같이 있고 싶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은 노력을 해야 가능한 일이라는데,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과 똑같은가 싶어서, 앞으로는 그런 글을 좀 더 찾아보면서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번역하는 일이 아무리 자연스럽게 하게 된 일 같다 한들, 부수적으로 따르는 생활 중에 낯선 면면이 많다. 이렇게 내향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향적인 사람일 것이며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이지만, 그래도 내가 옥외활동과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는 점을 미처 고려하지도 못했던 데다가, 실제로 일을 많이 하게 되기 전까지는 내가 그런 사람인 걸 잘 알지도 못했다.
지난 달의 고민은 대충 이런 것들에 기반했는데,조금 더 노력하기로. 나는 애쓰지 않고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이미 다 얻었고 나머지 불만족한 것들은 고생과 노력을 해야 가질 수 있다는 걸 차츰 알게 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실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1초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 마찬가진데 누굴 너그럽게 볼 수 있는 마음은 점점 좁아지는 반면 그런 이상적인 생활은 영영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남을 좀 더 사랑하며 살기로;;
다음 달에는 소정의 먹이활동을 하면서 4번, 5번을 계속 옮길 것이고, 학교를 오가면서 그놈의 논문을 끝내는 데 매진할 것이다. 지난 달의 일상이 다음 달로 그대로 옮아가는 느낌인데, 아마 7월까진 별 도리 없이 똑같이 지내게 되지 않을까 한다. 그래도 다음 달에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친구를 두세 명쯤 더 만나고, 아무리 하고 싶더라도 책임지지 못할 일은 벌이지 않고-반 년 뒤면 더 잘 할 만한 시간이 생길 것이다!-책을 읽을 것이고, 연극과 영화를 보는 데 저녁을 통째로 쓰는 날도 일부러 만들 것이다. 힘든 일은 울거나 꽁해 있지 말고 잘 적어두기로.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