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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언젠가 내가 병신, 했을 때 너는 대체어로 등신, 을 제안했다. 병신은 너고 등신은 난데 어째서 그게 같지, 생각했지만 페인풀리 커렉트하게 참았다. 그래서 what a jerk, 하면 뭐가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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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십삽년에 본 영화들 가운데 좋았던 건 관람일자 순으로 <문라이즈 킹덤(웨스 앤더슨, 2012)>,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사라 폴리, 2012)>, <가장 따뜻한 색 블루(압둘라티프 케시시, 2013)>, <로렌스 애니웨이(자비에 돌란, 2012)> 였는데 그 중에서 역시 세번째 것을 가장 자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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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월에는 일곱 편의 영화를 보았지만 한 달 동안 본 것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일민미술관의 <애니미즘> 전시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였으니 영화는 사람의 삶에 딱히 무슨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가보다. 이달의 술자리는 남포동 26번포차에서 참꼬막을 놓고 셋이 앉아 포차 주인 아주머니의 인생역정을 경청한 거였고 이달의 순간은 설날에 갔던 인왕산이었다. 한 달간 술을 포함한 약속이 열 번 있었고 이 정도면 계속 마음을 괴롭히던 생각(내가 술을 끊어버린 게 아닐까, 너무 폐쇄적인 게 아닐까)에서는 벗어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일에는 큰 진전이 있었고, 글에는 보폭도 없다. 이달의 악몽은 두 번이었다. 실은 세 번이다. 모든 것이 내가 jerk magnet이 되는 일을 그만두고 나의 시간을 좀더 소중히 여기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타인에게 그 정도의 해는 끼치고 산다. 그게 무슨 고통을 당할 근거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