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얼음
jeopardy
별__
2010. 12. 1. 14:37
나는 고요히 살고 싶은데, 오, 세상엔 빗치가 너무 많아.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만이라도, 가능한 만큼은 정직해야 하지 않겠나. 유유상종이다. 내 친구들 중 몇이 쓰레기라면 나는 그애들과 함께 바닥으로 내려갔거나 적어도 방관했다, 그러니까. 그래도 이 말은 해야 하는데, 어제는 친구가 물었다: 그애가 별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 결국 별의 오만 아니야? 어떻게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부정할 수 없는 몇몇 단언들과 함께.
하지만 나는 네가 내 머리채를 잡기 전에 내가 내 다리를 잘라 버릴 수 있는 사람인데, 즉 오만하기 보다는 교만한 사람인데, 그래서 바늘 끝만큼도 다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내겐 단 하나의 약점이 있었고 많은 망조와 파국 속에서도 그녀가 무탈하길 바랐다. 우습지 않나, 우린 이렇게 어른이고 대학도 졸업했는데 다만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에 혹은 별반 다르지 않은 엇비슷한 이유들로 서로를 죽이고 부수면서도 허세와 치장을 걷어낼 수 없다. 그애는 내게 손끝 하나도 대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망가뜨렸지. 나는 효과적으로 망했다. 그래도 난 교만한 사람이어서 열심히 걸어다녔다. "그애가 아니었다면 난 행복했을 거라고, 아무 문제 없었을 거라고, 그애가 다 망쳤고 그애 때문에 내가 이렇게 엉망이 되었다고" 나를 붙잡고 토로하는 목소리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의 고통에 동조하며 그애를 증오하거나 응징하는 대신에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았었다. 마지막 표정이라도 고결할 수 없을까, 당신은 이런 더러운 일로 해쳐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걸어나가는 대신에 한밤을 달리고 울고 토하는 자신이 추하단 생각 같은 건 들지 않나. 난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안 될 작정이었어, 그러니까.
어젯밤에는 마음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음극으로 끌려들어갔다.
울고 소리지르고 유리를 깨는 대신에 한쪽에 바지런히 누워서 잠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거나, 적어도 자라서 이런 사람이 됐다.
깨어나서 집으로 순간이동하면서 나는 내가 발한지옥을 걷고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그냥 날씨가 춥고 옷이 얇은 평범한 귀갓길이었다. 폴에게 뜨거운 차를 한 잔 달라고 말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주전자의 물이 다 끓기도 전에 의식은 우주공간 저쪽으로 갔다. 나사에서는 곧 중대발표를 한다는데 목성이나 그 즈음에 박테리아라거나 뭔가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어쨌든 어젯밤에 내 넋은 거기에 있고, 넋 나간 몸만 전기요에 밤새도록 누워 있었다. 우리 이런 공간의 낭비를 그만두고 전부 목성으로나 갈까, 거긴 슬픔도 없을 거다, 덧없는 욕망도 없고.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드라마틱한 멋진 고리도 있어.
요즈음의 블루스:
세상에는 빗치가 너무 많아
오 하지만 난 다만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오 하지만 세상에는
빗치가 너무 많아
레이디 그레이에서는 부러진 과일나무의 잔가지 맛이 난다.
*
어제는 G와 저녁을 먹었다. 그녀의 얼굴에 대해 말해야겠다. 짧은 머리의 그녀를 보면서 참 잘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발을 벗고 길고 곧은 머리채가 어깨 위로 떨어지는순간 기묘하게 예뻐서 깜짝 놀랐다. "중성적이라는 말 많이 들어요" 하지만 그런 진부한 수사 말고, 그녀의 얼굴을 위한 더 정교한 말은 없을까.
*
(언니야, <햄릿> 3막에서 거트루드의 내실 휘장 뒤에 숨어 있던 폴로니어스를 햄릿이 찔러 죽여. 거트루드는 '오, 햄릿--햄릿--' 하고 길게 흐느껴. 응 맞아, 음란한 장면이야. 언니야, 그런데 알고 있었어? 셰익스피어 극의 전통에 대해, 폴로니어스로 분했던 배우는 5막 1장에 다시 나와. 언제나 그래. 오필리어의 무덤을 파는 무덤파기꾼1(gravedigger 1)로 재등장해. 무덤파기꾼은 이 극에서 최고의 광대야. 요릭의 해골을 집어드는 햄릿에게 그 해골이 어느 빌어먹을 미친놈의 것이라고, 응, 틀림이 없다고 말하는 게 바로 그 사람이야.)
사람들이 자꾸만 죽는 계절이야.
나는 오래 살 거야 복권도 샀고,
엄마가 직장을 그만둔다고 한다, 그녀는 스물다섯부터 그 일을 했다.
깜짝 놀랐지만 그녀가 최근 겪는 일들을 풍문으로 들었고 그녀의 결정을 존중한다.
피를 나눈 식구의 일들을 자꾸만 풍문으로 들으면 이상하지, 안되는데.
이제 못 하겠어, 다 싫어,
응, 엄마, 나도 학교 싫어 잘했어.
그러나 그녀는 이제 자신을 무능력자라고 부른다.
엄마 무능력자 아니야, 그냥 무직자일 뿐이지, 나처럼.
농사 짓고 꽃 심으며 살래.
촌부처럼 말하네. 우리 엄마.
그러니까 너도 이제 너를 부양하면서 살어, 학교 꼭 마쳐야 한다. 결혼 자금이나 그런 거 못 대줘, 엄마는 무능력자야, 이제. 하지만 집이 있으니까 괜찮아. 연금도 나올 거고.
내가 엄마한테 놀러가서 살게.
아니, 너도 직장을 구해야지.
안 구해.
고작 그렇게 살려고 학교를 이렇게 오래 다니니.
응, 딱 이렇게 살 작정이었어.
처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