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t
온갖 귀신같은 사람들 중에서 조이스 캐롤 오츠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겠는데, 좋은가 싶다가 또 그렇게는 좋지가 않다. 읽었던 것 중 제일 좋아했던 게 바로 이 단편 heat 인데, 귀신같은 화자와 귀신같은 전개와 귀신같은 서술 그러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재작년에 파리 마치 앤솔로지에 실린 걸로 처음 읽었는데, 아무런 의욕도 없는 기념으로 대강 옮겨놓는다.
쇄석도로 위로 열기가 일렁이고 매미는 나무에서 울부짖고 하늘은 백랍처럼 새하얀, 한여름이었다.
진흙 빛을 띤 얕은 강줄기가 늘상 한 방향으로 흐르는데도 너무 느려서 알 수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는 항상 같은 날인 것만 같았다. 일요일만은 달랐다. 아침나절의 교회, 두툼한 일요 판 신문, 컬러 만화, 손가락에 묻어나는 활자 얼룩.
리아와 로다는 낡아 녹이 슨 자전거 위에 올라 철길 공터를 향해 난 긴 언덕길을 쌩쌩 내닫는다. 위플 얼음가게를 지나, 젖소가 풀을 뜯는 관목 투성이의 목초지를 지나. 리아와 로다는 사랑하는 할머니로부터 육 달러를 훔쳐왔다. 리아와 로다는 열한 살이었다. 둘은 일란성 쌍둥이였다. 둘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에 흠뻑 취해 있다.
리아와 로다 컨컬. 언제나 리아와 로다였다. 로다와 리아라고 불리는 법은 없었다. 왜인진 나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불리는 법이 없었다. 학교 선생님들도 그렇게 부르는 법은 없었다.
우리는 그 애들을 보러 장례식에 갔다. 억지로 가야만 했다. 희고, 부드럽고, 매끈하고, 플라스틱처럼 완벽한, 근사한 사탕 상자 속처럼 주름잡힌 새하얀 새틴 안감이 있는 쌍둥이 관 속의 쌍둥이.밀랍같이 새하얀 백합, 탤컴 파우더와 향수 냄새. 장례식장은 붐볐다. 들어가고 나가는 길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리아와 로다는 똑같았다. 그 애들은 그러길 바랐다. 한 명, 한 명 차례로 바라보아야 그 애들이 둘인 걸 알았다.
열기는 망사 같았다. 수영을 하는 것처럼 헤치고 움직여야 했다. 할머니 집으로부터 메인로드를 따라 사우스메인의 끝까지, 포장도로가 마을을 벗어나며 자갈길로 바뀌는 곳까지 리아와 로다는 자전거에 올라 무심코 열기를 쌩쌩 헤치며 달렸다. 7학년이 시작되기 직전의 여름이었다, 그 애들이 죽은 것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애들은 몰랐다.
때로 그 애들은 같은 순간에 같은 생각을 했고, 같은 꿈을 꿨고, 얽힌 실타래를 물 속에서 건져내는 것처럼 그 꿈을 기억하려 들면서 온 종일을 보냈다. 우리는 그 애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질투했다. 우리 중 누구도 쌍둥이가 아니었으니까. 때로 그 애들은 심각하게 굴었고 또, 기억을 떠올려 보면, 살해라도 당하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낄낄 웃을 때도 있었다. 그 애들은 책상이나 사물함에서 물건을 슬쩍하곤 했지만 걸리면 곧장 돌려주었다. 그건 놀이 같은 거였다.
장례식 안에 보이는 환풍기는 세 개였는데, 프로펠러가 달린 높은 환풍기가 빠르게 돌며 더운 공기를 순환시켰다. 사방에서 이상한 바람이 날아와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 즈음 로저 위플이 체포되어 유치장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그를 해치지 않았다. 그는 재판에 서지 않게 되었다. 그는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판결을 받고 구류에서 영영 풀려나지 않게 되었다.
그는 몇 년 뒤 주립 정신병원 안에서 죽었고, 집으로 돌아와서 땅에 묻혔다, 그러니까, 그의 육체 말이다. 그가 지상에 남긴 흔적이.
리아와 로다도 같은 묘지에 묻혔다. 제일 감리교회. 묘지는 교회 뒤의 작은 뜰에 불과하다.
관 속에 들어 있는 죽은 아이들은 우리가 아는 아이들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둘은 눈을 감은 채 등을 대고 누워 있었고, 입은, 살아서 잠든 모양과 꼭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 애들의 얼굴은 너무 작았다. 속눈썹 하나하나가 보였다, 너무 완벽했다. 천사 같다, 고 모두가 말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 애들을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았다.
그 애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그 애들의 하반신은, 관 속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로저 위플은 아버지와 함께 위플 얼음가게에서 일했다. 신문에서는 그가 19살이었다고 했다. 열 여섯살이 될 때까지는 드윗 클린턴에 다녔다. 세이디라는 엄마 친구는 그곳의 교사였는데, 특수학급에서 그를 만난 기억이 난다고 했다. 크고 느리고 다정다감한, 손도 발도 커다랗고 허벅지는 햄 같은 소년. 수줍음이 많고 예의바르며 조용조용한 목소리를 가진 착한 아이.
그는 특수학급의 다른 아이들처럼 머리가 둔한 것이 아니었다.그는 주의깊었고, 자제력이 있었다.
멜빵바지를 입은 로저 위플이 형들 중 한 사람이 모는 아버지의 트럭 짐칸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드라이브웨이로 트럭의 소음이 다가온다, 차가운 냄새가 나는 묵직한 얼음조각, 그의 어깨에는 얼음집게를 지고. 그는 튼튼하고 어른 남자처럼 어깨가 둥글었다. 비틀거리지도 끙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무엇을 떨어뜨리는 법도 없었다. 커다란 얼굴에는 색이 바랜 것처럼 옅은 눈, 웃음기를 띤 부드러운 입매. 우리는 킥킥 웃으면서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은 그가 동물도 해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위플 가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장담했다.
얼음을 빨면 냉기가 턱을 뚫고 내려와 뼛속까지 시리다.
사람들은 그 애들을 컨컬 쌍둥이라고들 했다. 둘을 떼어놓고 보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나중에 그렇게 고요하고 엄숙하며 거의 아름답기까지 한, 파우더로 주근깨를 숨기고, 볼과 입술에 루즈를 살짝 발라 완벽한 작은 인형 같은 얼굴로 보일 줄은 몰랐던 촌스러운 아이들. 나는 관 옆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속삭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이, 리아! 이봐, 로다! 일어나!
그 애들은 똑같이 시끄러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애들에게는 수줍음이 없었다. 줄을 서면 항상 맨 앞이었다. 만약 한 명이 앞에, 한 명이 뒤에 섰다면, 그 사이에 선 사람한테는 무슨 장난을 칠 것이었다. 불꽃 같은 오렌지빛 머리와 그에 어울리는 표백한 것처럼 새하얀 피부, 더러운 빗방울이 쫙 튄 것 같은 주근깨. 제발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빤히 쳐다보는 날카로운 초록 눈.
심각한 장소에서 리아와 로다는 늘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다. 교회에서, 학교에서, 골목길에서, 둘은 자꾸만 서로를 쳐다보면서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질식하는 것처럼 캑캑 웃음을 삼켰다. 가끔 그 애들의 손가락 사이로 김이 새듯 웃음이 빠져나올 때가 있었다. 가끔 그 애들이 코웃음이라도 흘리면 아무도 참을 수가 없었다. 최악이었던 것은 조회 시간이었는데, 교장 선생님은 앞에 서서 플래글러 선생님이 돌아가셨으니 우리 모두 그분을 그리워할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돋보기 안경을 낀 교장 선생님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였는데, 쌍둥이 중 누군가가 숨을 죽인 채 작게 코웃음을 쳤다. 여자애들의 줄 전체로 불길이 훅 번져나가는 것처럼, 우리 모두 참을 수가 없었다.
가끔 "간지럼" 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불이 붙곤 했다. 오직 그 단어 하나만 있어도.
나는 리아와 로다가 방 한 가운데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며 쳐다보는 관 안에 누운 모습이 그렇게 낯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않는다, 모르는 일에 대해서만 상상한다. 내가 가본 적 없는 곳, 내가 만난 적 없는 사람들. 가끔 꿈 속의 내가 내가 아닐 때도 있다. 그게 누구인지, 난 모른다.
리아와 로다는 위플 얼음가게 뒤로 들썩이며 자전거를 몬다. 그 애들은 미친 것처럼 웃고 있어서 움푹 패인 도로 때문에 이가 딱딱 부딪치는 것도 먼지가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것도 알 바 아니다. 그 애들이 전날 밤 같은 꿈을 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뜨거운 햇살이 그 꿈을 싹 지워버렸다.
죽음이 당신에게 다가올 때 당신은 알 수도 모를 수도 있다.
로저 위플은 헛간에서 혼자 일했다. 아이들이 헛간에 들어가서 빨아먹거나 집어던질 얼음을 달라고 할 때도 있었고 그를 놀릴 때도 있었는데 못된 아이들이어서가 아니라 달리 할 일이 없어서였다. 느릿느릿한, 여름 내내 아무런 변화도 없이, 때로 밤 늦게까지 열기가 꺼지지 않기도 하는 나날들. 그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과 함께 놀길 즐겼다. 그의 지능은 그 나이, 6학년 정도의 학습 능력에 불과하다고, 신문에서는 밝혔다. 더하고 빼기는 금방금방 할 수가 있었지만, 그 밖의 셈은 곤란했다고 말이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가 항상 이상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늘 주의를 늦추지 않는 모습도, 두툼하고 부드러우 입술도. 위플 일가가 그를 아무렇게나 돌아다니게 놔둔 것이 잘못이라고.
사람들은 그가 항상 착하고 상냥한 아이였다고, 일요일이면 주일학교에 가서 조용히 앉아서는 어떤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성경 카드를 모았다. 소중히 간직하려고 매트리스 안에 숨겨두었다. 그의 어머니는 일찌기 큰 개나 말을 훈육하듯이 그를 훈육했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모르도록, 지신의 의지를 시험할 기회를 주지 않고.
동네 사람들은 위플 일가가 실제로 말처럼 일했다고 했다. 형들이 가장 무자비하게 일했다. 그리고 어째서 그들이 이렇게 더운 날에도 전부 두꺼운 데님에다 긴 바지로 된 위아래가 붙은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제일 미드랜드 은행 위에 붙은 온도계는 화씨 98도였다. 그날 정오에 그랬다고, 우리 엄마가 알려주었다.
그 후로 며칠이나 우리 엄마는 밤마다 잠들기 전에 나를 안아주었다. 내 머리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속삭였다, 아마 예수님께 어린 딸을 사랑하고 보호해 달라고, 위험으로부터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겠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나는 눈을 꼭 감고 견뎠다. 때로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 식구 모두, 때로는 엄마와 나 둘만, 내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 때도 나는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 걸, 엄마가 사랑하는 딸이 바로 나라는 것을, 그리고 그 딸이 받을 자격이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컨켈 부인은 쌍둥이를 보고 웃으며 눈을 굴리곤 했다. 그 집에서 그 애들은 "더블 트러블" 이라고 했는데, 라디오에서 매일 반복하는 농담처럼 늘 듣는 소리였다. 컨켈 부인도 그 애들과 같이 기도를 했을까. 그 애들이 그러도록 놔 뒀을까 궁금하다.
밤이 길면 낮에 있었던 일은 잊어버린다. 세상의 반대쪽에 와 있는 것처럼. 그리고, 해가 뜨고, 열기가 퍼진다. 밤을 잊는다.
우리는 학교 뒤뜰을 뛰어다녔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러 오기도 하는 곳, 한 번은 개가 한 마리 죽어 있었는데, 아름다운 털을 가진 콜리였지만 눈은 눈구멍에서 빠지고 없었고 누가 발로 개를 움직여 보려고 건드리자 구더기가 끓는 게 보였고 그것을 본 리아와 로다는 한목소리로 비명을 지른 다음 눈을 가렸다.
그애들은 멋진 일들을 했다. 친구들에게 캔디 바, 매니큐어, 어디선가 훔쳐온 신기한 열쇠고리, 플라스틱 액자에 든 영화배우 사진을 줬다. 영화를 보러 가면 둘은 팝콘 한 상자를 나눠먹느라 둘 중 하나가 자리를 떠나고 그 자리에 영 모르는 아이가 앉아도 몰랐다.
한 번은 컨켈네 집의 베란다로 기어들다가 그 애들이 내 옷을 벗긴 적이 있었다. 한쪽에 흙을 퍼낸 커다란 빈 공간이 있어서 머리를 찧지 않고도 앉을 수가 있었다. 시원하고, 흙과 돌 냄새가 났다. 리아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옷 벗어! 그러자 로다도 말했다. 옷 벗어! 어서!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 옷을 벗기 전에는 내보내 주지 않았던 것이다. 셔츠도, 바지도, 그래, 팬티도. 어서, 이렇게 속삭이면서 그 애들은 웃었다. 그 애들이 길을 막고 있어서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겁이 났지만 웃고 있었다. 우리가 너를 지배할 권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라고 그 애들은 말했다. 하지만 그 애들도 옷을 벗었다. 나처럼.
당신에게는 타인을 지배할 힘이 있지만 이를 시험하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컨켈네 집 베란다에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지만 서로를 만지지는 않았다. 내 이가 딱딱 떨렸다, 만약 누가, 어떤 남자애가, 아니면 컨켈 부인이, 우리를 보면 어쩌지? 나는 겁에 질렸지만, 행복하기도 했다. 우리의 얼굴만 아니라면, 그 애들의 얼굴과 내 얼굴만 빼면, 우리는 모두 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테니까.
컨켈 가족은 강가에 지은 크고 낡은 미늘벽 판자집 한켠에 살았고, 다리 위에서는 트럭이 요란하게 기어를 바꾸며 언덕을 올라가는 소음이 다 들렸다. 컨켈 부인에게는 아이가 여덟이었는데 리아와 로다가 막내였다. 다른 엄마들은 전부 어째서 컨켈 부인이 그렇게 살았는지가 의문이었다. 컨켈 부인은 달처럼 둥근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머리카락은 꼬불꼬불하고 지저분했다. 아마 200파운드는 나갈 것 같은 몸으로, 날씨가 더우면 땀을 심하게 흘리고 숨도 힘겹게 쉬었다. 엄마들은 학교에 다닐 때부터 컨켈 부인과 아는 사이였다. 컨켈 씨는 이 지역의 건설일을 돕는 인부였다.작업이 끝난 여름날 저녁이면 그는 베란다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담뱃재를 정원에 떨어버렸다. 꼭 개똥벌레처럼 생겼다고, 깜박 속을지도 모른다. 그는 열기 때문에 웃통을 벗고 색을 입힌 목재같이 검게 탄 상반신을 드러내곤 했다. 가슴털에 뒤덮인 작고 납작하고 보랏빛이 도는 젖꼭지를 보고 여자애들이 낄낄거린다. 컨켈 씨는 우리를 잘 놀렸다. 그는 우리들의 이름을 헛갈리는 것만큼 리아와 로다의 이름도 헛갈려했다.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는 게 그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 듯했다.
컨켈 씨도 유치장에 들어갔다. 장례식에도 올 수 없었다. 컨켈 부인은 두툼한 턱에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채로 장례식장에 있었는데 지나치게 두꺼운 화장이 엉망이 되어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부모님과 내가 장례식장에 들어서자마자 컨켈 부인이 나를 부여잡고 풍선처럼 커다란 가슴에 날 끌어안고 흐느끼기 시작하는 바람에 나는 겁에 질렸다.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만 같아서, 밀어낼 수가 없었다.
경찰이 컨켈 씨를 보호하는 것은 전적으로 컨켈 씨 본인을 위해서라고, 경찰에서는 말했다. 살인범이 이미 잡혀들어갔는데도 그는 위플네 집에 가서 잡히는 놈은 늙은이든 형이든 다 죽여버리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는 모두가 전부 죄인이라고 했다. 그의 어린 딸들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그들을 다 찢어놓겠다고, 그는 말했지만, 그는 타이어 교체용 쇠지렛대를 들고 있었다.
한 시간 전에 리아와 로다가 할머니한테서 6달러를 훔쳐온 것은,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까 아니면 그냥 우연이었을까. 죽음이 그애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이상,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신을 믿는다면, 그렇게 믿어라. 신을 믿지 않는다면, 명백한 문제다.
그 애들의 할머니는 시내의 구두 가게 위층, 메인 스트리트를 내려다보는 아파트에 살았다. 그 애들은 할 일이 없으면 자전거를 타고 찾아왔고 할머니는 포도 주스나 레모네이들을 내주며 그 애들을 잠깐 붙잡아두려고 했던, 외로운 할머니였지만, 친절했고, 내게도 항상 친절했다. 리아와 로다가 할머니의 돈을 훔친 건 역겨운 짓이었지만 그 애들은 항상 그런 일을 했다. 한 명이 부엌에서 할머니와 이야기하는 동안 아무런 사전 계획도 없이 한 명이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와선 할머니의 침실로 들어가서 지갑에서 돈을 훔쳐내는 그런 일을 그 애들은 매일 같이 했다,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 무슨 짓 했어? 리아가 뭔가 안 해도 좋을 일을 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인지, 아무튼 얼마나 되는 돈인지 몰라서 묻는 질문이었다. 둘은 안전한 곳으로 떠날 때까지 서로를 쿡쿡 찌르면서 웃음을 참았다.
자전거에 탄 채 그 애들은 페달을 밟고 일어선 채로 브레이크를 잡지 않은 채 언덕을 내려왔다. 무슨 짓을 했어? 아, 무슨 짓을 한 거야?
리아와 로다는 언제나 자신들은 서로 떨어질 수가 없다고 했다. 한쪽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채로는 다른 한 쪽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니면 다른 한 쪽이거나. 아니면 둘 다 죽거나.
어딘가에서 돈을 조금 훔쳐오면, 어디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애들은 우리를 영화관에 데려가 줬다. 그 다음에는 아이스크림도 사 줬다.
신문을 두 번 읽어도 정확히 그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른들은 오랫동안 그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우리에게 해주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가 얼음송곳을 사용한 건지도 모르겠다. 남들의 말을 엿들어도 나보다 더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리아와 로다가 살해당한 것도, 신문에 난 온갖 일들도, 모든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애들이 죽은 게 좋았다는 건 아니다. 우리들은 그 애들이 보고 싶었다.
나중에, 10학년이 되었을 때, 카우프만 쌍둥이가 우리 학군으로 전학을 왔다. 도리스와 다이앤이었다. 하지만 그 애들 같지는 않았다.
로저 위플스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다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그 말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거나, 어느 정도는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주립병원에서 나온 의사들이 그를 검사했던 것이다. 그는 자꾸만 자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그날 오후에 쌍둥이를 만난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어째서 그 애들의 자전거가 자기 집 계단 발치에 있었는지도, 어째서 대낮에 자신이 목욕을 했는지도 설명하지 못했다. 위플네 식구들은 로저든, 다른 식구들이든, 대낮에 목욕을 하는 습관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로저 위플은 깔끔한 편이었다. 그의 손은 트럭에서 얼음 덩이를 꺼낼 때든 부엌에서 얼음을 아이스박스에 넣을 때든 늘 깨끗했다. 식구들은 얼음창고에서 지푸라기 조각이 그의 손톱에 끼거나 옷에 들어가기만 해도 로저가 질색을 한다고 증언했다. 그는 면도를 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매일 아침 실수도 없이 면도를 했다. 식구들은 수염이 자라는 모습이나 수염의 까끌까끌한 감촉에 로저가 겁을 먹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몇 년 후 그의 여동생 린다는 우리에게그가 말과 같다고 얘기해 주었다. 린다는 우리 또래로, 로저보다는 한참이나 어렸다. 그 말을 할 때 린다가 자기 가랑이를 가리켰기 때문에 우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야기했다. 린다는 우연히 몇 번이나 봤다고 했다.
그는 먼지 속에서 쪼그리고 앉은 채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리아와 로다가 자전거를 타고 자기 주변을 맴도는 것을 보고 있었다. 쌍둥이는 자전거로 로저를 칠 만큼 가까이 다가가는 거친 놀이를 했고 흙받이로 로저에게 부딪치면 그는 덤벼드는 척 했지만 바큇살에 손가락이 끼어도 모르는 것 같았다. 너무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일이라 아픔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얼음창고 뒤로 난 뜰은 바로 옆에 있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오래된 철길 부지의 공터와 연결되어 있었다. 태양은 탈 듯이 뜨거웠고, 그 애들이 먼지를 구름처럼 일으켰다. 두꺼운 작업복까지 입은 로저 위플은 이 놀이를 계속하고 싶어했지만, 그 애들은 금방 질리고 말았다. 로저는 흥분해서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웃는 것을 좋아했지만 웃을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리아는 목이 마르다며 얼음을 달라고 했고, 로저 위플은 금방 올라가서 얼음조각이 잔뜩 담긴 커다란 자루를 가지고 왔다. 로저에게는 그 정도의 센스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애들은 얼음 조각을 빨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로저는 숨을 몰아쉬느라 개 흉내를 내며 혀를 빼물었고 리아와 로다는 소리를 쳤다. 멍멍아, 여기야, 멍멍아, 여기! 로저 위플에게 얼음 조각을 던지자 그는 입으로 받아먹으려고 했다. 이 놀이도 한참을 갔다. 결국 쌍둥이는 남은 얼음을 전부 땅에 버렸는데, 그러자 로저 위플은 이먼 형이 침대 매트리스 밑에 숨겨놓은 비밀이 있는데 혹시 궁금하냐고 물었다.
그는 리아와 로다를, 로다와 리아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 중 몇 사람은 방법을 알았다. 리아의 얼굴에 있는 주근깨가 로다의 주근깨보다 조금 더 짙고, 리아의 눈은 로다의 눈보다 좀 더 짙은 색이었다. 하지만 알아보려면 둘을 나란히 세워두고 비교해야만 했다.
리아가 좋아, 하고 말했다. 리아는 비밀을 파헤치길 좋아했으니까. 그 애는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쓰러뜨리고 다가왔다.
로저 위플은 한 번에 한 명씩만 계단 위의 방으로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좋아, 하고 리아가 말했다. 컨켈 쌍둥이 중에서는 리아가 뭐든 항상 먼저 하고 싶어했다.
자기가 먼저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그 애는 말했다. 몸무게도 1,2파운드 더 무거웠다고 했다.
로저 위플의 방은 이상한 곳이었다. 위플네 집에는 나중에 증축해 붙인 난방도 되지 않는 창고 공간이 있었는데, 그 위층이 로저의 방이었다. 바깥에서는 이 공간을 통과해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그의 방으로 갈 수 있었다. 로저는 늘 집 안을 거치지 않고 이렇게 방에 드나들었다. 사람들은 위플네 식구들이 로저를 짐승처럼 살게 했다고, 집 안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다고 했지만 위플네 식구들은 이를 부인했다. 방에는 집 안으로 통하는 문도 있었던 것이다.
그 날 로저 위플의 몸무게는 약 백구십 파운드였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병원에서는 약을 먹고 풍선처럼 부어올랐다고 했다. 피부는 빵 반죽처럼 부들부들하고 하얗게 되고 머리가 빠졌다고 한다. 서른한 살로 사망했을 때 그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가 정확히 어쩌다 죽었는지 위플네 식구들은 전혀 모른다. 병원에서는 수면 중 심장 정지라고 말했다.
로다는 눈 위에 손으로 차양을 만들고 리아가 계단을 뛰어오르고 로저 위플이 그 뒤를 따르는 모습을 보다가, 무언가 잘못되었거나, 앞으로 잘못될 것이라는, 최초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 애는 징징거리는 목소리도 자기도 같이 가겠다며 따라붙었다. 혼자 기다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리아는 조용히 거기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라고 대꾸했고, 그래서 리아는 흙투성이로 녹아가는 얼음조각을 발로 차면서 기다리다가, 잠시 후 불안해져서, 문은 닫혀 있고 창문의 가림막도 내려져 있었는데, 망할 것들아, 난 집에 갈 거라고, 기다리다 지쳤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도 문 밖으로 나오거나 창가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방 안은 비어 있는 것만 같았다. 처마 밑에 벌들이 진흙 덩이 같은 집을 지어 놓아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벌이 붕붕거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로다는 누구라도 보고 있었다면 자기가 집에 간다고 생각했을 모양으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내달렸다. 그 애는 리아가 밉다고 생각했다. 쌍둥이 언니가 너무 미워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저주받았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집에 갈 거고, 가자마자 리아가 할머니의 6달러를 훔쳤다고 일러바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때 그 6달러는 로다의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위플네 집은 벽돌 흉내를 낸 붉은 아스팔트를 발라 현대식으로 보이려고 애를 쓴 낡은 농장주택이었다. 1층은 넓고 엉성했고, 2층은 좁고,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 바닥에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는 부분도 있었는데, 로저 위플의 방도 그랬고, 나중에 경찰이 한 말을 빌려서 사람들은 여기가 가축 우리같다고, 구석에 침대를 쑤셔박아 놓고 가구 조금과 위플 부인이 갖다 둔 상자 몇 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게 되었다.
그날 오후, 위플네 집 식구-식구들 중 7명이 아직 그 집에 살고 있었는데-중 집에 있는 사람은 위플 부인과 딸 아이리스 뿐이었다. 두 사람은 뒤뜰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맹세했다.
로다는 리아를 남겨 놓고 집에 가겠다고 결심했지만, 드라이브웨이를 벗어날 무렵 무슨 생각인가로 다시 자전거를 돌리게 된다... 만약 보고 있었더라면, 뭔가 할 일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했을 모습인 그 애는, 빨간 머리에, 흰 피부, 주근깨, 작고 마른 몸으로, 빠르게 페달을 밟다가, 또 늦추더니, 페달을 밟지도 않고 돌아다니다가, 다시 빠르게 페달을 밟다가, 방향을 바꾸고, 지그재그로 길을 돌아다니더니, 화난 듯이 혼잣말을 했던 것이다. 리아가 밉다고, 리아에게 화가 났다고, 하지만 일종의 두려움 역시느끼면서, 또 속이 야릇하게 울렁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자기와 리아는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고, 둘 중 한 사람, 아니면 두 사람 모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신들도 알고 있을 그런 일이.
그래서 로다는 다시 집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를 리아의 자전거 옆에 눕혀 놓았다. 자전거는 물려받은 낡은 것으로 받침대는 부서지고 없었다. 그러나 그 애들 아버지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 타이어를 새로 갈아주면서 기름칠도 해 놓았다.
쌍둥이의 자전거가 하나만 놓여 있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언제나 두 자전거가 같은 방향으로, 페달 역시 같은 위치에 놓인 채로,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로다는 2층을 올려다보았다. 창에는 여전히 가림막이 내려져 있고, 문도 여전히 닫혀 있다. 로다가 외쳤다. 리아? 어이, 리아! 자기 소리가 들리도록 남자애들처럼 난간을 잡아당기며 시끄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아직도 겁이 났다. 하지만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것도, 속이 울렁거리면서 화도 나는 기분도, 강한 모습을 보이는 데 도움이 됐는데, 이때 문이 열리고 로저 위플이 마치 자신 역시도 겁에 질린 것처럼 땀이 흥건하여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로다를 바라보았다. 그는 로다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손바닥을 작업복에 훔치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로다를 바라보기만 했고, 그의 눈으로 노르스름한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냥,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덩치가 컸지만 어깨가 굽어서 그가 얼마나 큰지, 몇 살인지를 가리기는 어려웠다. 지푸라기 색의 머리카락이 눈을 덮고 있는데다가 기도를 하는 것처럼, 혹은 온 몸의 힘을 다 끌어모아 손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을 서로 얽어대고 있었다. 그는 자기 방에 쌍둥이를 들인 것은 기억하지 못했고 왜 피가 묻었는지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엄청나게 울었고 겁과 죄책감에 질린 것처럼 행동했고 두들겨 맞은 개처럼 비굴하게 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재판에 세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 위플 부인은 집에 틀어박혀 절대 밖에 나오지 않았고 교회는 물론 장을 보러 나가지도 않았다. 로저가 죽고 난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암으로 죽었다. 그녀는 아들을 사랑한다고, 늘 말했다. 사실은 그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고, 그는 동물도 다치게 할 아이가 아니라고, 그는 특히 아기 고양이들을 좋아했고 착하고 다정하고 유순한 아이인데다가 신앙심도 강하고 예수님이 그 아이를 지켜주실 것이며 무슨 일이 일어났든 간에 로저를 괴롭힌 것은 그 여자애들이 틀림없다고, 컨켈 쌍둥이가 어떤 애들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로저는 평생 동안 아이들에게 괴롭힘과 놀림을 받아 왔고 이같은 학대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으며 하필 그날 무엇인가 틀어진 게 틀림없다고, 그게 다라고.
그러나 경찰을 부른 것은 위플네 가족이었다. 위플 씨가 얼음창고 구석에서 지푸라기와 캔버스 천으로 숨겨진 쌍둥이의 시체를 발견했다. 똑같이 생긴 두 아이가, 나란히.
그가 그 애들을 발견한 것은 그날 밤 9시경이었다. 그는 알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 그는 알앗다.
로저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도, 컨켈 쌍둥이가 실종된 것도,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로저가 대낮에 목욕을 하고, 머리도 감았으며, 누가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바닥만 보고 앉아 있엇다고. 그래서 그들은 그의 방에 올라갔고, 혈흔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알게 되엇다.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얼음창고에서 그 캔버스 천을 들추던 순간이었다고, 위플 씨는 말했다.
위플 씨에게도 그 사건은 고통스러웠다. 그는 영영 회복하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는 그 생각, 전부 위플 씨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신실한 감리교 신자였고, 신앙심이 투철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이시기에, 그분은 로저에 대한 사랑을 그치지도 그를 외면하지도 않을 것이며, 로저가 진정으로 참회한다면 그는 구원받을 것이며 천국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위플네 모든 식구들이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그는 믿었지만, 이는 그가 사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얼음창고는 여전히 그대로 있지만 판자를 대어 막아 놓았고 폐가가 되었다. 위플네 얼음 사업도 오래 전에 접혔다. 이제 그 집에는 낯선 사람들이 살고, 뜰에는 녹이 슨 자동차와 픽업트럭이 서 있다. 위플네 식구들 몇몇은 이 주에 이리저리 흩어져 살고 있지만 동네에는 아무도 없다. 오래된 철길 공터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결혼을 하고 몇 년이 지나 나는 이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 남자의 이름을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는 때로 그곳에서 만난다. 이제는 잡초와 관목만이 우거진 그 공터에서. 어린애처럼 거침없이, 거의 만취에 가까운 상태로, 나는 이 남자에게 미쳐 있었다. 미쳐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 말고는 누구도, 이렇게 사랑을 나누는 우리 두 사람 말고는 어떤 일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내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면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일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 년, 또는 삼 년, 그리고 다른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끝이 났는데,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나는 그 여자를 알아볼 수가 없다, 내가 아니라 내가 경멸할 어떤 미친 여자라고, 결혼 생활과 아이 같은 것들을 전부 위험에 처하게 하는 대가로 고작 이런 일로 인생을 망치려던 그 여자, 세상에.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한다.
마치 자기 멋대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얼음 창고 뒤에 세운 그 남자의 차 안에서 나는 리아와 로다에 대해서, 그날 로저 위플의 방에서 일어난 일들을 생각한다. 쌍둥이가 인형처럼 누워서 기울이면 눈을 깜박이는 인형의 눈을 하고 누워 있던 장례식장도 생각한다. 잠들 수도 없고 깰 수도 없던 어느 날 밤 나는 부모님이 내 침실 방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 리아와 로다와 나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나를 위험으로부터 지킬 것인지를 생각했다는 것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는 것도.
섹스가 끝나고, 아니면 적어도 첫번째 섹스가 끝나고, 그의 차 안에서 그의 품에 안겨 있는 나의 마음은 이리저리 떠돈다. 그리고, 로저 위플의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몇 개 남겨두고 망설이는 로다 컨켈의 모습이 보인다. 얼굴이 희게 질리고 겁을 먹었지만, 어쨌든 가보자고 마음을 먹고, 로저 위플을 밀쳐낸 뒤 리아를 찾으러 방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 문을 막으려는 것처럼 서 있지만 사실은 막을 기운이 없어서 그냥 서서, 체취를 내뿜으며 이번에는 혀를 길게 빼물고 우스꽝스럽게 개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로저를 로다가 밀쳐내는 모습을. 로다는 물었다. 리아는 어디 있어? 바깥의 햇살이 너무 밝아서 처음에는 깜깜한 골방 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로저 위플은 리아가 집에 갔다고 대답한다. 한참이나 쓰지 않은 것처럼 긁히는 듯한 목소리다. 그 애는 집에 갔어, 하고 그가 말하자자, 로다는 리아는 절대 혼자서 집에 가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로저 위플은 로다를 따라붙어며 말한다, 아니야, 집에 갔어, 아니야, 집에 갔다고, 마치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로다에게 화가 났다는 듯이. 로다가 리아를 부른다. 리아, 어디 있어? 그리고 무언가 침대 시트에 휘감긴 것에 발이 걸려 비틀거린다.
로다의 등 뒤에서는 덩치 큰 남자가 자꾸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아니야, 집에 갔어, 아니야, 집에 갔다고,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러나 누군가 듣고 그녀를 구하러 올 정도로 커지지는 않는다.
나는 그 곳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저절로 알게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