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얼음
적적하다
별__
2010. 12. 19. 06:12
이틀간 적적했다. 적적해서 입술에 립밤이나 얹기로 했다. 다시 전지전능한 순록 같은 기분인데, 즉 이런 일들: 책상에 앉아 커팅 매트를 대고, 노란 색 노트패드를 커터칼로 잘라서 뿔이 이어진 순록들과 엉덩이가 이어진 순록들을 만들었다. 나에게는 왜 뿔도 없을까? 올라프라는 순록이 살았는데, 그애는 뿔이 하나 부러졌지만 꿈은 하늘을 나는 거였다. 노르웨이에는 올라프라는 이름의 왕이 있었고,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은 뽀로로도 가지고 있었다. 이 너드 같은 안경에 털모자라도 쓸라치면 나도 어엿한 뽀로로처럼 보인다.
노트패드에 그린 순록의 가느다란 뿔을 실수로 베어 없애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되려 내 손가락을 벴다.
좋은 사람이 되고 나서 한동안 딱히 좋은 사람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했는데, 다시 별로 안 좋은 사람이 되고 나자 갑자기 온 세상을 찾아다니며 변명하고 싶다, 난 좋은 사람이고 혹시 내가 조장하는지도 모를 오해에 속지 말라고. 지금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생명이라도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내 생명은 아니겠지만.
별 일 아닌 일들 속에서 그냥 산다. 나아지려고 산다. 죽은 고양이는 파란 연기가 됐을 거고, 끝나지 않은 원고들은 내일은, 늦어도 내일은 꼭 완성될 거다. (...) 올라프도, 딱 한 번 실수로 날았었다.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우연한 비행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추락하고 그 대가로 부상을 입는다. 그렇게 병들어 있으면 머리 위에서 대규모의 화관처럼 뿔이 우거지는 밤들도 있다.
그러니까 난 금치산 선고된 입술 위에 립밤이라도 듬뿍 얹어야 하지 않겠나.
죽은 고양이에 대한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만약 물루의 안부를 걸고 누가 내게 더한 걸 제의했어도 반드시 물루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어난 일들은 그게 어떤 것이건 다행하다. 이건 역겨운 생각이지만, 그래도 삶에는 실제로 각종 역겨운 일들이 일어난다. 사실 여기엔 역겨운 거래 같은 건 없었고 고양이는 의문사했고 물루는 물루라서 살아있는 것이건만. 저녁에는 뜨거운 카푸치노를 한 잔 샀는데,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불에 거꾸로 쏟았다. 왼손으론 아무것도 들지 않기로 했는데 깜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