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얼음

악몽들

별__ 2011. 3. 20.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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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 도시에서 나는 일하고 있었는데 (아마 굴 까는 노동이었는지도, 그렇다면 레퍼런스는 물론 <티핑 더 벨벳> 혹은 내 유년) 그밖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굴 까는 일보다는 캐는 일을 하고 싶었다. 밤에, 칼을 들고 물 속으로 들어가서, 바람 불고. 담배 연기가 실려왔다, 상습흡연자들은 전통적으로 남의 담배 냄새를 견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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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꿈에서 아까 꿈의 뒷모습이 돌아보았는데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의 비요른 안드레센처럼 생겼었다. (알아보기 쉽다, 어젯밤 아트시네마에 가서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볼 계획이었다. 못 봤지만.) 어두운 계단에서 앞서 내려가는 사람이 손을 잡아주지 않아 일부러 넘어졌다, "관심을 끌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뒤로 넘어질지 앞으로 넘어질지 고민했지만, 악몽에서 깨어나는 방편으로 나는 자주 일부러 뛰어내린다, 도약 지점을 발로 탁 차고 온 몸을 바닥으로 밀면 된다. 꿈 속에서 너무 자주 반복한 일이라 나는 가끔 학관 계단이나 이대역 에스컬레이터에서 그런 일을 해도 늘 그랬듯 다치지 않고 무사히 깨어나지 않을까 착각한다. 
 꿈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바닥에 부딪쳐 부서지는 일도 없었다. 다만 동행인이 대신 부서졌고 골절상을 입었다, 골절상이 아니라 '골절'을 입었다고 발음하던 것이 기억나는데, 그러나 그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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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꿈은 너무 길었다. 세 들어 사는 꿈은 원래 그렇다. 너무 오래 셋집살이를 했나, 셋집 사는 꿈에는 주거불안정의 감각이 따라오고, 그 집에는 자주 불결한 노인이 있었고, 나는 주로 범죄자다, 언제나 온-더-런. 다만 이번에 나는 범죄자가 아니라 논문학기 대학원생이었고 (그러므로 쫓기는 건 마찬가지다), 이번에 그 노인은 숨어 있었다.
 그녀는 내게 방을 다 보여주지 않았다. 타일로 된 집 안에는 방이 세 개 있었고 그녀의 방을 나눠썼다, 내게 준 두 개의 책상 중 하나에 짐을 풀고 책을 잔뜩 올려두었고, 꿈에서 나는 너무 약했다, 불길했다, 그녀가 내게 무슨 가혹한 일을 할까, 다른 방 안에는 불결한 노인이 숨어 있었다. 나머지 한 방은 열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양이와 나의 말로가 늘 그렇듯 우리는 호기심 때문에 그 푸른 수염의 방을 열어본다.
 문 안에는 또 세 개의 방, 또 세 개의 방, 그리고 끝없는 목욕실이 나왔다. 괴로운 냄새가 났다, 그 즈음에서 나는 이 꿈이 음란한 (책상 뒤에 주홍색의 사주식 침대가 있었으니까) 악몽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목욕실은 가스실의 은유였고 나는 나치에 부역하는 역할이었다.
 무슨 이런 더러운 악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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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의 독서 기록.
 - 프루스트, <스완네 집 쪽으로>를 다시 읽었다. 
 - <햄릿>에 대한 두 권의 비평서 발췌본.
 - 조원규의 옛 시집. 
 지난 이틀간 읽은 것.
 - 베케트, "Not I", "Play"
 - 새라 케인, "4.48 Psychosis" 우울증 환자들의 책은 읽어선 안 된다.  
 - 엘렌 식수와 콜레트의 발췌본 두어 장, 세상엔 세월이 가도 늘지 않는 게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나의 불어 실력, 또 하나는 과외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