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얼음

서사 없는 날들

별__ 2011. 2. 5. 21:11

 삼국유사를 다시 읽고 싶다는 건 이런 사연이었다: 삼국유사에 나온 이야기들을 요약한 포항의 옛 전설들 중 몇 가지가 무슨 전시관 벽에 붙은 걸 보다가 살라오와 한참을 웃었다. 하나는 포항 오어사의 전설인데, 원효대사와 혜공대사가 물고기를 삼켰다가 법력으로 되살려 놓는 시합을 했단다. 살아남은 물고기가 서로 내 물고기(吾魚)라고 우겼다고 오어사(吾魚寺)란다. 한편 학산의 전설에서는 웬 아낙이 빨래를 하던 중 귓가에서 날아오르는 학에 깜짝 놀라 방망이를 휘둘러 때려눕혔더니 학이 산으로 변해 그녀를 깔아뭉갰다고. 물고기 삼키는 건 미국 캠퍼스 프레시맨들이 허세대결하며 하는 일 아니었냐며, 그리고 아낙은 순발력을 발휘했을 뿐 무죄인데 어쩌면 좋아. 요즘은 <삼국유사>뿐 아니라 <요재지이> 같은 이야기들에 끌리는 나날들이다. 거의 결벽하리만치 부재하는 서사 속 오직 문학적인 느낌만 가득한 공간을 원하는 낭만주의자의 일을 나는 주구장창 해왔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일정한 분량의 <환상특급>을 시청하는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