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얼음
복학한다
별__
2011. 2. 26. 07:46
자꾸 혀를 깨문다. 복학하고 싶지 않은 이유들은 너무, 많다. 그리고 모두 진실이다. 한때는 학우들을 경멸해서였고, 한때는 노동이 지나치게 많아서였고, 한때는 내가 못나서였고, 한때는 공부가 더 이상 이번 생의 과제가 될 만큼 반짝이지 않아서라고, 말해왔고, 사실이다. 거짓말은 없다. 건강상의 사유로 휴학원을 제출했으나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사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러나 동시에 충분한 사유가 (역시 사인이) 될 만한 진단서를 언제나 소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사흘인가 나흘 전에는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대학원생의 지겨움을, 오직 대학원생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에는 이미 이골이 났는데도, 그날은 손이 덜덜 떨렸다. 남들은 더 고통스러우니 "똑똑하고 재능도 있는" 너는 차라리 위악을 떨라는 것이었다. 나 이렇게 잘났는데 더 못 가져서 힘들어요, 이렇게. 그날 들은 비유들은 적절치도 못했고 무척 모욕적이어서 옮기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너의 개인적인 고통 때문에 문학이나 학문에 관해 회의하는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모욕감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마지막 말에 관해 마음을 돌릴 생각은 전혀 없다. 문학의 효용에 관해 다만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판단할 자격이 주어진다면, 독자이며 작가이며 그것의 연구자가 되는 일을, 다른 대안들, 아무리 하찮고 구질구질한 대안이건 간에, 혹은 없건간에, 선택 가능한 다른 우주들을 일순간 압도하는 선택을 했고, 그것에 관해 결자해지하려는 사람들 외에는 없다.
나머지는 다른 이야기다.
대학원에서 나는 똑똑했다. 그리고 똑똑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모든 일에서 최악의 약자가 아닐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일이 괴로웠지만, 다행히 내가 멍청해서 괴로울 일은 별로 없었다. 많은 이유로 미움받았지만 적어도 멍청해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똑똑한 애가, 거의 모든 순간 괴로워하며 잘 못 지내고 있는데,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싶어했고, 가능한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했다. 그게 나를 적진에서 죽지 않게 했다. 적진에서 나를 보호하는 이들이 마침 권력자였다. 모든 특수한 배려와 사랑을 받기 충분히 똑똑한 건 아니었으나, 적어도 이만큼이라도 똑똑하지 않았다면 내게 주어지지 않을 것들이었다.
똑똑하다는 건 중요했다. 그것 때문에 다른 것들을 모두 버틸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다고 오판했다. 가능하면 더 똑똑하고 싶었다. 여기서의 더 나은 입지를 사는 도구였고, 그걸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한 발짝도 후퇴할 수가 없다. 대학원에서 불행했다. 수많은 이유들을 이야기하는 데 벌써 지쳤다. 사람들을 경멸했고, 당장 더 나은 대안은 없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는 부담이 되었고, 조교 업무는 때로 부당하게 여겨졌고, 공부하는 일은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그 모든 것이 이유가 된다, 나를 가장 많이 괴롭힌 이유보다 더 나은 이유가 되는 것들이다.
나는 거기서 외로웠고, 외로웠고, 외로웠다. 무서웠다. 조금도 나 자신이 아니었는데, 다른 무엇도 아니었다. 나는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덜 이상한 사람이고 싶었다. 자기 자신보다 더한 걸 팔 수 있었더라면 무엇이라도 팔아서 멀쩡한 삶을 사고 싶었다. 똑똑함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된다. 거푸집이 있으면 덮어썼을 것이다. 몇 번이라도, 몇 번이라도. 거기는 내가 거할 곳이 조금도 아니었는데, 다른 무엇도 없었다. 사랑하던 친구들을 모두 미워하게 되었고, 그 어두운 데로 돌아가는 것도 싫어서, 경멸하는 삶과 비슷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게 외롭고 그게 무섭고, 그게 이유다. 즉 다 내 문제다.
다른 문제들도 있다. 공식적인 문제들이고, 조금 더 공감 가능한 문제들이고, 충분히 문제들이다. 대학원생들은 때로 실질적인 선택의 여지 없이 착취당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갈수록 더욱 더 깨닫고, 절대 충분한 시간과 돈을 갖지 못한다, 없어서가 아니라, 사치라 여겨지기 때문에. 인문관은 언제나 추운 곳이고, 좋아했던 사람들은 늙고 추해진다. 그런 것들을 겪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돈을 지불한다. 내가 본 적도 없는 돈이다. 대가로 무엇을 받는가? 생산한 걸 학회나 학술지에 소비하는 것? 사실 나는 아직도 그 일들이 이해가 잘 안 된다. 가장 운이 좋은 사람들이 이 추운 곳에 남는다. 그게 문제의 전부는 아니고, 핵심도 아니다. 그래도 그건 충분한 이유다. 이것으로 누구도 이해시킬 수 없다면, 내 외로움은 무엇도 설득 못한다.
덜 외로울 자신이 조금도 없지만, 다만 그간의 관성과 갖기로 한 맹목성(일단의 고지가 눈 앞이고, 내게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해도 거기 가면, 숨은 돌릴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오직 지겨움 때문에 돌아간다. 지겨워서, 복학하느냐 마느냐의 고민을 끝내고 싶어서. 그리고 그건 나 같은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에게 절망감을 준다. 이번 생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도 몰라서, 평생 이렇게 외로울 줄 알게 되어서. 그러니까, 외로웠고, 무서웠기 때문에, 나는 학교를 미워한다. 사적인 이유다. 여기에서 내가 읽은 것은 기이하게도 아무 도움이 안 됐다. 이상한 일이다. 문학을 전공하는 전일제 대학원생이 된 다음부터 문학은 축 늘어지고 징그러운 것으로 보였고 이를 곧장 깨닫지 못했지만, 깨달은 다음 나는 거기서 최대한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건 내 착시일 수도 있다. 일생의 찬란이라 믿었던 것들 역시 착시였듯이. 사전의 항목들이 바뀌고, 사랑이 늙듯이. 많은 시행착오들이 무용한 것이었듯이, 문득 무용해지는 것들이 생겼다. 높은 데 있던 것이 순식간에 추락하는 속도는 무시무시하다,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사랑이 미움 쪽으로 마음을 틀듯이,
외로웠다. 그래서 미웠고,
여전히 슬프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는 것이 아니더라도,
끝맺기도 싫은 얘기다. 다 없었던 일로 하고 잠이나 자자.
이제는 대학원 가지 말란 얘기 하기도 지겹다.
남의 인생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해 줄 필요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