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얼음

네 나름대로의 성실성

별__ 2010. 12. 10. 20:19

 복학을 할지 말지 슬슬 생각해야 하는 때가 왔다. 향후거취의 희망과 여건, 복학하지 않으면 제적될 시점과 살고 있는 집의 계약기간과 그런 것들은 절대 서로 맞아 떨어져 주는 일이 없다. 

 휴학 후로,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에도 일찍 자는 사람이 됐다. 올빼미와 고양이의 시간에 깨어 있는 사람들은 대개가 예민하지만 문제가 지속된다면, 그건 게을러서다. 적당한 고 투 베드 할만큼의 결단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권총 한 정을 머리에 겨누고도 후미에 붙은 걸쇠만 꾸준히 딸깍거리면서 침을 삼키는 종류의 사람들. 어쨌건 나는 새삼 어떤 종류의 결단력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우유부단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생존시간대를 변경한 대가는 소음. 언젠가는 집 앞 길을 다 뜯어서 각종 관을 매설하고 있더니, 요 며칠은 밤낮의 구분이 없이 하수관 공사중이다. 옆집 하수도가 막혔다고 해서 우리 집도 덩달아 시키는 대로 물을 틀었다가 잠갔다가 했는데. 아, 나는 고요가 필요한 사람이다, 고양이가 울고, 누가 문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쉽게 고통받을 수 있는데, 내 창문에서 딱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드릴(같은 것과), 진공청소기(같은 것과), 그런 것들이 움직인다.  
 자정 이후부터 오전 다섯시까지의 시간, 핵심이다, 요즈음 나는 그 시간을 잠 자는 데 쓴다, 요즈음은 잠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데, 그렇다고 깊고 순한 잠을 자는 것은 아니며, 말하자면 어느 때보다도 수면 장애인데, 밤마다 꾸는 길고 복잡한 꿈들은 갑자기 중단된다. 화학적인 起寢이 간밤의 꿈을 자꾸만 동반한다. 오전에는 간밤의 꿈에 대해 생각하고, 오후에는 밤새 꿈꿀 거리나 마련하며 살면 좋은 사람은 못 되겠지만 바깥에선 급기야 누가 삽 같은 걸로 바닥을 긁어대고. 

 재택근로자의 성실성에 대해 긴 일기를 쓰며 자신을 칭찬하려다 (갑자기 일의 폭풍에 봉착하는 바람에) 그만둔다. 대신 너의 성실성에 대해 쓰기로 한다. 2인칭의 복수형은 너희들, 혹은 당신들, 이 될까, 다만 좀처럼 하나인지 여럿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 영어식의 너, 를 채택하도록 한다. 매일 왜 이다지도 심려일까, 그래도 너, 는 네 나름대로 꾸준히 성실하다, 내가 밤마다 결연하게 잠들고 아침마다 잠에서 자기를 떼어내듯이, 나는 성실한 생활인으로서 점심 시간을 기점으로 이메일도 확인하고, 부재중 통화에 콜백하고, 예의상 무엇이 스팸 메일함에 잘못 걸러 들어간 것이 아닌지, 혹은 스팸 메시지함에 들어가야 할 것들이 잘 걸러져 들어갔는지 확인하는데, 아무래도 행복하지가 않다. 내가 불행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쓰게 되었듯 너는 제발, 같은 추임새를 남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말을 남발하는 건 그 말이 정말 가리키는 것들을 숨기는 것에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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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 쓰고 일 폭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