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얼음

꿈의 각색은

별__ 2010. 10. 24. 22:46


 방이 너무 귀엽다. 죽어가는 버틀러(화분), 벗어던진 보라색 스웨터와 지넷 윈터슨 소설의 아주 예쁜 표지, 한때 논문이었던 이면지들, 인셉션도 아니고, 무너지는 책 더미. 그리고 끝이 없는 음료수 병들. 공격적인 귀여움이다. 작은 턴테이블을 사서... 얼마 전에 어떤 영화를 보았는데 같이 본 이의 말로는 별의 인생을 재구성한 것 같다고 한다, 춤 추는 장면이나 연극하는 장면이나 비소를 먹이는 장면에서 그러하다고 했는데, 나는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자기 자신의 환영을 보는 장면에서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몇 가지 할 수 있는 말들이 더 있지만...

 잠에서 깨어 꿈의 파편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각색이 불가피하게 시작되지만, 꿈 이야기에서 무관한 디테일을 제거하는 데서 결정적인 삭제가 일어난다. 예컨대 어젯밤 꿈, 레이서로 분한 윤계상은 왜/어떤 장면에서 나왔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지만 없지만 어쨌거나 꿈에 윤계상이 등장했었다는 희미한 기억이 꿈에 특정한 색조와 텍스처를 드리우는 것이다.

 꿈에서,

 집에 오니 고양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꼭 어제 산 목욕 타월같은 면포에 그 아이들을 받쳐들고 있었는데 그 극단적인 가벼움과 불편한 감촉... 내가 잘 아는... 늑골을 쓸어 보았는데 바스라질 것 같았다. 대영박물관에서 수천 년째 혼자 있는 고양이 미라를 만났었다. 그애가 갇힌 이집트 단지와 그 부러진 목뼈 앞을 감히 떠날 수가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자연사박물관에서는 고양이과 동물들이 유리 눈알을 심고 속이 채워진 상태로 유리벽 너머에 도열해 있었지. 꿈 속에서 죽어가는 고양이들은 여섯 마리였고 그 중에는 물루도 있었다. 거칠거칠한 면포 위에 구근처럼 누워 있었다. 꿈 속에서, 고양이들이 죽기 전에는 연애에 실패했고(그게 윤계상과 무슨 관련이 있었나?), 고양이들 앞에 꿇어앉아 있는 내게 '언니들'이 회식을 하러 가자고 제안하였다. jj에게 했던 것처럼 비명을 질렀더니 언니들은 내게 넌 B급조교라 물루를 구할 수가 없다고. 그러니까 결국 이 꿈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가까운 과거에 내게 고통을 주었던 사건들의 우스꽝스러운 종합선물세트, 전날 구입한 목욕 타월로 꿈에선 시신을 수습하는 일.
 폭발적인 마음으로 깨어났을 때는 주말 출근 준비를 하던 폴이 내 방에 들어오는 참이었다. 방금 꿈에서 물루가 죽었어, 물루 만지게 해 줘, 물루 데려와 줘, 했더니 폴이 그래서 울었어? 했다. 아니. 물루가 살아 있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잠들었다. 신전의 돌기둥들 앞에서 콜롬비아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여자들이 내게 말했다, 물루가 죽어서도 이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우니 그게 삶이 아닐 것은 또 무어냐고.
 꿈은 꿈 속에서 내적 근거를 충분히 확보한다, 나는 꿈의 질서에 철저히 굴복할 의지가 있는데 그렇다면 깨어서 무엇하는가. 잠에서 깨어 전화를 몇 통 하고 어제 하다 만 일을 하고 라면을 끓여먹고 산책을 하고 담배를 피우고 탄산음료를 마시고 있으면 잠들어 있는 것은 오히려 지금이 아닌가 한다. 

 병에 걸린 고양이들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가벼워지고 체온이 식는데, 입가에 거울을 대 보거나 손가락을 심장에 대 보지 않아도 어느 순간 그 가벼움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으로 풀썩 주저앉거나 날아오른다, 체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벼움에 대해 내가 아는 게 무엇이 있겠는가. 

 그렇게 가벼운 체중으로도, 죽고 나면, 몸이 눌린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죽은 고양이를 어서 수습하지 않으면 머리가 한쪽으로 찌그러진다. 끔찍한 이야기인가? 젖어서 가라앉은 털들은 절대로 다시 마르지 않는다. 고양이에게서는 냄새가 난다. 특히 여름이라면. 나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고양이들이 죽어가고 있었고, 여름이었으니까. 고양이가 사망하는 순간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했겠지만, 정확히 그 순간부터, 부지런해야 한다. 
 여름이니까. 
 고양이가 내 침대에서 죽어도 어쨌든 언젠가 그럴 기력이 있거든 나는 침대에서 잠들어야 하고. 

 사람들에게는 자기 자신의 결정적인 부분을 변경하고야 마는 순간들이 수 회 일어난다. 끔찍하고 실용적인 대안들을 취하면서 어제보다 조금 더, 자기 자신에게 악의를 가지게 된다.